233년 역사를 가진 영국 베어링 은행의 파산 뒤엔 한 풋내기 행원 닉 리슨의 터무니없는 실수가 숨어 있었다. 미국의 은행들은 시쳇말로 ‘회사를 말아먹은’ 이 몰락의 주인공을 스카우트하려고 안달복달이었다. 희귀한 실패 경험을 얻기 위해서다. 탄탄대로를 달리는 사람의 성공담에 군침 흘리는 우리 사회라면 씨나 먹힐까?
모든 실패에는 일정한 법칙성이 잠재한다. 1건의 큰 재해(실패)에는 경미한 재해(실패)가 29건 있고, 29건 안에는 깜짝 놀랄 일들이 300건 들어 있다. 내일부터 조심기간으로 설정된 ‘산불’도 똑같다.
이것이 1 대 29 대 300의 법칙인 ‘실패의 하인리히 법칙’이다.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쉬운’ 속성처럼 어떤 전조(前兆)가 앞서는데 이를 잘만 체크하면 크나큰 실패를 거뜬히 비껴갈 수도 있다.
대덕밸리에서 특강을 하기도 한 서두칠 전 한국전기초자 사장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저명한 경영컨설팅 회사로부터 회생 불능 판정을 받은 회사를 흑자기업으로 살린 주인공이다.
구태여 이렇게 실패를 강조한 이유가 무엇인가. 무슨 일만 터지면 대통령부터 나서서 ‘다시는 그러지 말자’를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나 늘 뱅뱅 맴도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것은 사고나 실패, 시행착오 사례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공유하지 않고 쉬쉬하며 덮어둔 까닭이다. 더욱이 현대 산업사회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가 규정한 그대로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위험사회다. 그럼에도 실패 컨설팅, 실패학 전문가가 없다.
최근 일본에선 정부 차원의 실패학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거세다. 우리도 장관이 반짝 언급하더니 사라졌다. 위험사회론은 우리 회사, 우리 사회를 진단하는 패러다임이다. 29번, 아니 300번에 1번만이라도 실패의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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