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시아버님이 드실 보약 한 재 달여 주세요.” “알았어. 내일 한의원에 나오시라고 해.” “김 서방, 이 알약 먹고 술을 먹으면 취하지 않아. 한약인데, 술 먹기 전에 한 봉지 먹고 술 먹은 후에 한 봉지 먹으면 술이 잘 깨.”
한의학을 전공한 오빠, 현대의학을 전공한 여동생 부부 사이에 오고간 대화인데, 주위에 분쟁이 있을라치면 늘 떠올려지는 이야기다.
펠릭스 멘델스존 하면 ‘결혼행진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네 살 위 누이 ‘파니 멘델스존’도 어려서 바흐의 ‘평균율’을 악보 없이 연주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그런데도 동생의 장래를 위해 음악가의 길을 접었다. 뿐만 아니라 작품 8번을 필두로 그녀가 쓴 여섯 곡은 부득불 동생의 이름으로 빛을 봐야 했다.
우리에겐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설화가 있다. 그보다 ‘흥부와 놀부’ 이야기를 예로 들면 권선징악이나 형제간 우애의 시각에서 자주 인용된다. 또, 더러는 자산 증식 능력이 있는 자본주의형 놀부와 무능력한 구두쇠 흥부의 이야기로 재해석되기도 한다. 가부간에 분명한 것은 한국적인 형제애의 관점에서는 썩 바람직하지 않은 형제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나는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하지만 고흐보다 더 고독했던 동생 테오의 생애가 더 훌륭하다고 본다. 그토록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챙기던 형이 죽은 뒤 반 년만에 죽을 때까지 테오가 견뎠어야 할 비탄과 과로, 그 엄청난 무게의 삶은 측량할 수가 없다. 고흐의 무덤 앞 해바라기처럼 노랑으로 상징되는 처절한 색채감과도 같은 인생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사람들은 고흐의 절망만을 기억한다. 세상의 모든 창조자, 구도자, 혁명가의 빛은 주변사람들의 눈물 젖은 희생으로 광택이 나는 생리를 지녔음일까? 중국의 명의 편작을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침이 마르도록 치켜세웠던 편작의 형―그도 명의였다―도 실은 이런 채찍의 아픔을 견뎌냈을지도 모른다.
또, 알고 있다. 연년생인 형을 위해 학업을 포기한 동생, 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결혼도 미루고 헌신하는 누이…….
서천에서 살인 미수 혐의로 체포된, ‘돈 안 준다’고 60대 형을 흉기로 찌르고 이를 말리는 40대 형수를 때린 50대의 무자비한 동생을 보고 반추해본 것이다. 실천은 못하지만, 형제는 한 손에 붙어 있는 손가락들과 같다시던 선친의 말씀만은 늘 가슴에 담아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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