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한의 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생가터가 있는 홍성과 묘소가 있는 보령에는 관광객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보나마나 ‘야인시대’의 영향이다. 김두한 역을 맡은 안재모의 카리스마가 단단히 한 자락 하는데 그가 목포에 갔을 때 취객들이 “야 김두한, 나하고 한 번 붙자” 하는 바람에 곤혹을 치렀다고도 한다.
극중 김두한과 구마적의 결투는 압권이었다. 거리의 주먹세계지만 승부에 승복하고 홀로 만주로 떠나는 모습은 깔끔했다. 워낙 의리나 리더에 대한 향수에 굶주렸음일까? 정치하는 분들에게는 실례의 말이 될 테지만, 그램 수로 따지면 추구하는 바가 다를 뿐 정치가와 조폭은 생리상 비슷하지 않을까?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고비고비 재주를 부려 망명도생(亡命圖生)하는 현세태는 어떤 의미로 자유당정권 때보다 못한 측면이 있다. 쟁기질하는 농부가 한눈을 팔면 “이놈의 소가 누구(철새정치인)를 닮아서 오락가락한다”는 말이 유행하던 적이 있다.
우리에게도 당적을 옮기면 변절자로 낙인찍혀 아예 재선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국회에서는 전체 의원의 4분의 1이 당적을 바꿨었다. 세상을 사육신이나 생육신처럼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명분 없는, 또는 명분이 부족한 이합집산도 이제 신물난다.
논산 탑정저수지의 철새가 바쁜 일상에서의 여유를 되찾게 한다. 천수만의 철새떼는 정말 장관이다. 새들이 창공을 멋지게 V자로 대오를 지어 나는 것은 날개 밑에서 서로 양력(揚力)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가는 먼 길을 쉽게 하기 위해서다. 노을을 비껴 나는 새떼들을 보셨는지.
석양녘 전나무가 추워 떠니 철새가 준동한다. 탐조 여행이라도 떠날까 보다. 누가 철새인지, 여름새인가 겨울새인가, 아니면 나그네새인지를 가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즐겨 부르던 ‘엘콘도파사’를 번역하면 썰렁하다.
요는 이것이다. ‘달팽이보다 참새가, 못보다는 망치가, 길보다는 숲이 되고 싶어…….’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
변절과 배신의 시대, 영웅설화를 다시 보는 뒷맛만은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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