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 속마음

  • 오피니언
  • 문화칼럼

겉보기 속마음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제사지낼 때 대추, 밤, 배, 감의 조율이시(棗栗梨柿)의 순서를 기호학파의 어느 집에서는 율곡이니까 밤이 먼저라며 율조이시로 바꾸어 차린다.

경상도 안동의 한 서생이 한국은행에 율곡 이이는 5000원권 지폐에 나오는데 퇴계 이황은 왜 1000원짜리냐며 항의성 질문을 했다. 은행측은 이에 대해 “더 훌륭한 분을 더 많은 사람이 자주 뵈어야 하기 때문에 1000원짜리에 모셨다”고 재치 있게 넘겼다고 한다.


이렇듯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고 이로 인해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 빛이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왜곡 교과서를 두둔하며 반대 의견 죽이기에 앞장서는 보수우익의 산케이(産經)신문과 이에 반대하는 아사히(韓日)신문의 논조는 분명 다르다.


같은 성경책의 해석과 학설을 둘러싸고 기독교는 여러 교파로 나뉘었다. 주자학이 이론 투쟁으로 흘러 당쟁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됐으며 병자호란 때 전쟁이냐 평화냐 두 파로 갈리어 삼학사가 죽기도 했다. 가깝게는 ‘악의 축’ 발언이나 6・15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자구(字句) 풀이를 둘러싸고 설전을 거듭한 것도 한 가지 예일 것이다.


우리에게 한미수호조약은 명실상부한 개국을 의미한다. 실은 이 중요한 조약의 당사자가 이홍장의 심복으로 서양 물을 먹은 중국(청)의 마건충이었다. 우리측 전권대표 신헌은 막판에 하라는 대로 그저 사인을 했을 뿐이다. 그러고서 조약 제1조의 ‘필수상조(必須相助)’를 위태로우면 미국이 모름지기 도와주겠다는 약속으로 철석같이 믿었었다.


영문본에는 이 부분이 없었지만 어차피 까막눈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황준헌의 ‘조선책략’에 조선결맹(朝鮮結盟)이 나온다. 단순히 조약체결일 뿐인 이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중국 촉나라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형제의 의를 맺었다는 고사에서 나옴. ‘형제를 맺는다’는 뜻)에 버금가는 군사동맹쯤으로 받아들였다. 그 실력으로 합방 전까지 11개 나라와 114개의 국제 조약을 맺은 우리가 신통하기만 하다. (같은 맥락에서 9․11 테러가 외국어로서의 아랍어를 경시한 오만 탓이라는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일본은 그들이 어렵사리 터득한 네덜란드어 등 외국어를 영어와 나란히 써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줄였다. 거기에 특유의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를 교묘하게 양념처럼 섞었다. 다테마에는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 혼네는 속마음인 본심이다. 겉에는 국화, 속에는 칼인 것이다.


평화헌법을 자랑하는 일본은 방위청 예산이 우리 전체 예산액을 뛰어넘는다. 을사보호조약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맺은 조약들은 겉으로는 하나같이 미사여구였다. 속마음은 물론 조선을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그런 우리를 ‘바카야로’라 하지 않을까? 참으로 분통터지는 역사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2024 세종상가공실박람회 `혁신적 역발상` 통했다
2024 세종상가공실박람회 '혁신적 역발상' 통했다

세종의 높은 상가공실 문제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 문제 해결을 노린 혁신적 역발상의 '2024 세종상가공실박람회'가 실수요자들의 큰 관심 속에 막을 내렸다. 상가 소유주와 실수요자를 연결함으로써 상가공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시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동으로 20일부터 21일까지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이번 박람회에는 이틀간 1000여 명이 현장을 방문했고 프랜차이즈 부스에서는 6건의 실제 가맹계약이 성사됐다. 여기에 박람회 이후 10개 팀이 실제 상가 현장을 찾았으며 추가로 방문 예약..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