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안동의 한 서생이 한국은행에 율곡 이이는 5000원권 지폐에 나오는데 퇴계 이황은 왜 1000원짜리냐며 항의성 질문을 했다. 은행측은 이에 대해 “더 훌륭한 분을 더 많은 사람이 자주 뵈어야 하기 때문에 1000원짜리에 모셨다”고 재치 있게 넘겼다고 한다.
이렇듯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고 이로 인해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지금 빛이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왜곡 교과서를 두둔하며 반대 의견 죽이기에 앞장서는 보수우익의 산케이(産經)신문과 이에 반대하는 아사히(韓日)신문의 논조는 분명 다르다.
같은 성경책의 해석과 학설을 둘러싸고 기독교는 여러 교파로 나뉘었다. 주자학이 이론 투쟁으로 흘러 당쟁을 부채질하는 요인이 됐으며 병자호란 때 전쟁이냐 평화냐 두 파로 갈리어 삼학사가 죽기도 했다. 가깝게는 ‘악의 축’ 발언이나 6・15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인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자구(字句) 풀이를 둘러싸고 설전을 거듭한 것도 한 가지 예일 것이다.
우리에게 한미수호조약은 명실상부한 개국을 의미한다. 실은 이 중요한 조약의 당사자가 이홍장의 심복으로 서양 물을 먹은 중국(청)의 마건충이었다. 우리측 전권대표 신헌은 막판에 하라는 대로 그저 사인을 했을 뿐이다. 그러고서 조약 제1조의 ‘필수상조(必須相助)’를 위태로우면 미국이 모름지기 도와주겠다는 약속으로 철석같이 믿었었다.
영문본에는 이 부분이 없었지만 어차피 까막눈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황준헌의 ‘조선책략’에 조선결맹(朝鮮結盟)이 나온다. 단순히 조약체결일 뿐인 이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중국 촉나라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형제의 의를 맺었다는 고사에서 나옴. ‘형제를 맺는다’는 뜻)에 버금가는 군사동맹쯤으로 받아들였다. 그 실력으로 합방 전까지 11개 나라와 114개의 국제 조약을 맺은 우리가 신통하기만 하다. (같은 맥락에서 9․11 테러가 외국어로서의 아랍어를 경시한 오만 탓이라는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일본은 그들이 어렵사리 터득한 네덜란드어 등 외국어를 영어와 나란히 써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줄였다. 거기에 특유의 다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를 교묘하게 양념처럼 섞었다. 다테마에는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 혼네는 속마음인 본심이다. 겉에는 국화, 속에는 칼인 것이다.
평화헌법을 자랑하는 일본은 방위청 예산이 우리 전체 예산액을 뛰어넘는다. 을사보호조약에 이르기까지 우리와 맺은 조약들은 겉으로는 하나같이 미사여구였다. 속마음은 물론 조선을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그런 우리를 ‘바카야로’라 하지 않을까? 참으로 분통터지는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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