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와 신데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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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와 신데렐라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우리가 아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훗날 고쳐진 것이다. '그림 동화' 초판에는 요술할멈 또는 요정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신데렐라 어머니가 신데렐라에게 "내 무덤 위에 나무를 심고 원하는 게 있으면 그 나무를 흔들어라"고 유언을 남긴다.

나뭇가지는 '나누어짐'의 의미를 가지며 무덤에 심은 개암나무는 사람들 마음 속에 깃든 모성적 존재의 표현이다. 또, 발에 딱 맞는 유리구두는 처녀성을, 신발 한 짝은 처녀성을 잃은 것을 상징한다.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가필되고 정정된 신데렐라 이야기를 읽고 있다. 세기의 신데렐라라는 힐러리 클린턴이 상원의원으로 데뷔, 초라한 행색으로 나타나 이목을 끌었다. 동료 의원들이 놀란,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초라한 담요 같은 보라색 숄을 두른 모습의 힐러리는 과연 변신의 천재였다.

지나간 한때 백악관 안주인이 된 뒤 틈만 나면 매무새를 바꾸는 스타 일리스트로 언론에 단골로 오르내렸다. 어느 한 해만도 그녀의 헤어스타일에 관련된 기사가 무려 1903건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변신인지라 더욱 쇼킹하다. 만찬 때면 으레 유명 디자이너 도나 카렌의 이브닝 드레스를 즐겨 입었고, 뉴욕 맨해튼의 피부관리사를 워싱턴으로 부른 그녀가 그걸 모를 리 없다. 아름다움의 희생자(뷰티 빅팀)라고까지 명명된 그녀 아니던가.
이만하면 자신의 고유한 스타일에서 살짝 비껴나기를 시도한 힐러리의 계산은 제대로 척척 맞아떨어졌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의 완벽하고 유능한 사람일수록 가벼운 허점이 호감을 높일 수 있다. 이를테면 여성들 앞에서 실수인 척 일부러 컵을 깨뜨리거나 첫 데이트 때 극장표를 잃어버린다든지 하여 관심을 끄는 바람둥이들의 수법을 모방한 셈이다.

때로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함께 나누었거나 자기와 비슷한 상대방에 호감을 갖게 된다. 힐러리는 퍼스트 레이디가 되어 제일 먼저 안경을 벗어 던졌듯 상원의원이 되어 '담요 패션'으로 다시금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전에는 심리 실험에서 일컫는 '연합에 의한 대인 매력' 현상을 이용했다면 지금은 그것을 철저히 역이용하고 있다.

첫인상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가 극도의 세련됨이 아닌 의도된 빈틈을 보임으로써 점수를 딴 것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언제 또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예단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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