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시장 마을. 열차로 남행하다 전주를 조금 지나면 개나무라는 뜻을 가진 오수(獒樹)라는 지명과 마주친다. 지명엔 이런 내력이 깃들여 있다. 한 취객이 들판에서 잠들었고 산불이 번져 왔다. 개는 개천에 뛰어들어 몸뚱이에 물을 묻혀 적시기를 수없이 반복, 주인을 살려냈다.
잠에서 깬 주인은 죽은 개를 묻고 무덤에 지팡이를 꽂았다. 그게 큰 나무로 자랐고 땅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시장 옆 공원엔 의견비와 동상이 세워졌으며 그 희생의 생물학을 기르는 오수의견문화제가 매년 열린다.
대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음식을 시킬 때 꼭 2인분을 시키는 사람에게 궁금한 이웃들이 사연을 물었다.
"만주에서 가난하게 살던 시절, 난 내 아내와 눈이 맞은 옆집 중국인과 격투를 벌였답니다. 내 아내가 밀어준 칼을 집어든 중국놈이 날 찌르려는 순간 이 개가 놈의 목을 물고 늘어졌죠. 덕분에 죽음을 모면했던 거지요."
우동 몇 그릇에 아내는 정조를 버렸지만, 밥찌꺼기를 위하여 충성을 버리지 않은 개 몫을 그는 늘 챙기는 것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영화 'ET'의 아역 배우로 기억되는 미국 여배우 드류 배리모어의 집에 불이 났다. 그때도 애견은 곤히 잠든 배리모어와 약혼자를 침실 문에 온몸을 부딪쳐 깨웠다.
또 있다. 일본 도쿄 시부야역 광장에 동상이 있는 하치코(코='公'의 뜻으로 붙임)라는 개다. 동경제대 교수인 주인을 기다리다 죽었다는데 우에노 과학박물관에 박제까지 만들어놨다. 이 개의 이야기를 다룬 '하치 이야기'라는 영화도 나왔지만, 충직한 오수견과 대전의 개, 어쩐지 실화 같은 플란더스의 개, 배리모어의 애견 사이에 흐르는 공통점과는 다른 뭔가가 분명 있는 듯하다. 실제로 그 개의 사인은 위 안에 박힌 닭꼬치 막대기라는 설이 있다.
고령에 관절염이 겹친 번개가 명예퇴직(?)을 했다. 이 행사에는 후배 구조견 및 애완견 수백 마리가 자리를 함께했으며 제대 군인처럼 개목걸이(구조견 표식)도 반납했다. 아무쪼록 번개가 여생을 잘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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