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음료업계에 책과 영화, 시 등과 연계한 문화마케팅이 활발하다. 웅진식품은 자사 홈페이지에 '하종오 시인의 시 창작 여행'이라는 난을 개설했고, 롯데칠성은 사랑에 얽힌 사연을 공모해 한데 묶은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를 발간, 배포했다.
코카콜라는 영화 '해리 포터' 제작사인 미국 워너브라더스와 공동 마케팅을 펼쳐 소비자에게 영화티켓을 제공한다. 이러한 시도들이 모아지면 기업 이미지 향상과 함께 사회 전반의 문화지수를 고양시키는 데 일조할 것으로 믿는다.
우리가 어느 정도인가 헷갈릴 때가 많은데, 내남없이 인정하는 것은 교통문화수준만은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교통을 이루는 요소들인 이용자들의 가치관, 행동태도, 도시사회구조 등의 상호관계와 연관지으면 그러하다.
그 '지수(指數)'라는 게 자주 생각나는 요며칠이다.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주차금지'라고 팻말을 매달아놓은 것을 보았다. 누가 '찜'해 놓라 한다. 또, 도심 교차로에서 신호대기 중에 왼발을 운전석 밖 백미러 위에 걸쳐놓은 지난 여름의 외제차 속 젊은이의 영상도 지워지지 않는다. 무심코 던진 담배꽁초가 뒤따르던 트럭의 창문으로 들어가 불이 옮겨 붙은 사고도 있었다.
우리 문화의식은 대충 이 정도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문화향유 실태와 여건을 수치화한 국민문화지수를 개발한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인천은 몇 점, 부산은 몇 점, 전주는 몇 점 하는 식으로 환산된다. 여기에는 문화유산, 문화예술, 대중문화, 사회문화적 활동, 여가활동 등 5개 분야를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보다 시급한 것은 점수로 변환되지 않은 우리의 의식이 아닌가 한다. 유럽에서 여성과 동행하는 남성이 보도 안쪽으로 걸었던 이유는 길갓집에서 창문 밖으로 요강에 든 내용물을 쏟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었다. 통상 '예의'나 '예절'쯤으로 쓰는 '에티켓'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박아 둔 '소변금지'나 '화원을 다치지 않도록'이라고 쓰인 '말뚝'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가장 큰 덕목은 자신에 대한 엄격함, 타인을 향한 세심함이다. 가령 사무실내의 금연도 이런 마음에서 비롯돼야 실효를 거둔다. 그것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숫자를 헤아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이제 에티켓은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하는데 기준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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