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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한국학을 공부하러 부모의 나라에 온 카레이스키('고려인'의 뜻. 구 소련 내의 '한국인'을 말함)가 얼마 남지 않은 유학 과정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다른 무엇보다 그녀는 어딜 가나 따라붙는 차별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장원에만 가도 좀 어눌한 말씨를 듣고는 "어디서 왔느냐?"고 재우쳐 묻고, 고려인이라 하면 혀를 끌끌 차며 "거기는 못 산다는데……" 하며 업신여긴다는 것이다. 차라리 러시아 경찰에 소수민족의 설움을 당하고 사는 편이 더 낫다는 그녀는 캐나다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도 뇌리에 선명한 페스카마호(號) 사건도 그렇다. 돈을 벌겠다고 원양어선을 탄 중국땅 조선족들을 개만도 취급 안 하는 한국인들에게 선상 반란을 일으켜 참극이 빚어진 것이 아니었던가.

잘 사는 조국, 선진국으로 가고 있다는 조국을 자랑스럽게 여겨볼 겨를도 없이 그들은 희한한 조국 사람들에 의해 두들겨 맞고 바다에서 고기밥이 되기도 했다. 그들, 동포들 가슴에 남은 우리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지 않다. "배 내밀고, 돈을 마구 뿌려대고, 여자만 찾고, 조선족에게 사기 치고……." 슬프고 언짢은 일이다.

이들 교포들보다 외국인의 체감도는 훨씬 심하다. 광주 사투리를 잘 쓰는 미즈노 ??페이 교수가 한때 본국 귀환을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한국여성과 결혼하고 TV 출연으로 얼굴도 제법 팔렸으나, 이 나라에서는 외국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밖에 하지 못하는 한계를 절감해야 했다.

처가인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삼는 사람에게마저 너무나 제약이 많을 뿐더러 백안시(白眼視)하는 시선에 도저히 견디지 못한 것이다. 부끄럽게도 우리 나라는 외국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라로 국제 공인을 받았다.

우리끼리는 또 어떤가. 단적인 예를 들어서, 고급아파트와 서민용 연립주택에 사는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초등학교에선 서로 편을 갈라 패싸움을 할 지경이 되었다. 오래 전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친지를 찾아갔는데, 그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같은 반 급우들 사이에도 잘 사는 아이들끼리 생일파티를 따로 하고, 체육시간에도 따로따로 논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는 좋은 동네의 기준을 이렇게 삼는다. 한밤중에 갑작스레 해열제 한 알이 필요했을 때 옆집 문을 두드릴 수가 있는가, 그런 이웃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 건너가 오붓이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이웃이 있다면 행복하다. 땅값이나 집 평수와 무관하게, 그게 스위트 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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