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성의 발달은 그러한 '힘의 논리'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전통 사회의 우리 국제관계만 보더라도 중국을 중심으로 '천하'(天下·이것이 그 시대의 세계였으며 세계관이었다)라 일컫는 동북아시아 세계질서를 인정하고 그 속에서 평화적 공존체제를 찾는 과정이었다.
이처럼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교관행을 사대(事大)라 하고 다른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를 교린(交隣)이라 규정한 데서 '사대주의'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중국은 책봉이라는 절차로 정권을 인정했으며 조공(朝貢)과 사여(賜與)라는 형식으로 국제무역이 행해졌다.
당시로선 중국이 선진국이었기에 문화 수입도 이 외교 절차에 의존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측면을 깡그리 무시한 채 그것을 '굴종과 지배'로만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사대주의적 사고'일 수 있다.
만약 우리 민족이 호전적이어서 힘을 숭상해 거기에 국가의 존망을 맡겼다면 벌써 북방민족 같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원의 몽골족이나 청을 세운 여진족은 어디에 있는가. 러시아 같은 대국에 편입되거나 중국에 동화·흡수의 길을 걷지 않았던가.
최근 미국과 관련해서 숭미사대주의라는 말이 자주 입길에 오르내린다. 영어 이름짓기를 권유하는 글이 나와 반발을 샀는가 하면 이명박 서울시장이 슬로건을 발표하겠다며 자신의 티셔츠에 적힌 '하이 서울, 위 아 서울라이트(Hi Seoul, We are Seoulite)'를 외쳤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주말인 24일 행사차 들렀더니 부소산성내 사자루(문화재자료 99호)의 이강공(李堈公)이라고 씌어 있던 현판이 새로 바뀌어 있었다. 광복회 대전충남지부의 건의에 따라 최근 교체했다 한다. 휘호자 의친왕의 이름에 일본식 공(公)자를 붙인 기존의 현판은 내년 완공되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전시관에 보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체성 혹은 사대주의, 굴종주의, 민족모멸의식……. 어떤 이는 우리 안의 사대주의를 지정학적으로 반도국가가 갖는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비하한다. 똑같은 반도국가인 이탈리아에서 찬란한 로마제국이 세워진 사실(史實)은 잊고서 말이다. 그들은 반도의 불리함을 대륙과 해양, 양쪽으로 진출하기 쉬운 유리함으로 되돌려 번영을 구가했다.
어떤 사안이 사대인지 아닌지는, 어디까지가 '외교'이고 '아부'인지처럼 모호성을 풍긴다. 지금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을 놓고 항의 시위하는 시민들과 국방부의 인식은 크게 동떨어져 있다. 그 판단 기준은 우리 자신에게 주체성 내지 자존심이 있는가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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