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양국간의 불행했던 역사를 감정적인 차원에서만 다루는 자세도 어느 쪽에든 득이 되질 않습니다." 언젠가 구마모토현 국제교류실장인 다카기 후미히로를 직접 만났을 때, 그 역시 내게 원론적인 얘기만을 들려주었다.
미안하게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조용필과 김연자가 좋으며 돌솥밥이 맛있다는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국가간, 민족간에 평화공존하는 비무장 역사(Disarming History)가 대두되는 판에 역사를 '무장'하려 한다. '최고의 총리 최악의 총리'라는 책이 나왔지만, 혹시 그가 최악의 총리가 아닌가.
하필이면 우리 현충일 무렵, 일본에선 우리 돈 만원 정도에 문제의 교과서가 시판됐다. 방한 중인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전 베트남 역사연구원 원장도, 전 독일 총리도 침략 미화를 신랄히 비난한 그 책을 말이다. 독일이 나치의 강제노역에 대한 보상을 발표한 시점에 일본에선 "김치가 좋다"고만 해도 혼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확실히 일본엔 진정한 리더가 없는 것인가. 대신에 '삼국인'(한국, 북한, 중국)이 불미스런 사건을 일으킨다며 '논좌(論座)' 5월호에서 농반진반 "히틀러? 히틀러가 되고 싶다"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같은 극우분자가 설쳐댄다. "힘들 때는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군함으로 돌진한) 가미가제를 생각"하는 '괴짜' 총리만 있는 것인가.
또, 최고액 1만엔짜리에 부활한 후쿠자와 유키치가 있다. 아시아에서 탈피, 유럽으로 편입하자는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으로 일본을 제국주의의 미궁에 빠뜨린 그 인물이다. 춘원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을 내놓아 독립운동 따위 치우자고 했던 것도 전적으로 그에 힘입었다.
이 와중에 주일대사는 "(한국과 일본이) 같은 교과서를 만들면 좋은 일이 될 것"이라 했다. 앞서 말한 비무장 역사를 일컫는다. 이는 독일과 폴란드, 프랑스와 독일간 시도되고 있으나 피해 가해자가 너무나도 명확한 한국과 일본간엔 난해한 해법일 것이다.
게다가 일본인은 바나나 속성을 띤 집단이다. 황인종이 백인종 흉내를 내니, 겉은 노랗고 속살은 허연 바나나 같다. 문장연구사 대표, 한말글연구회 회장과 셋이 독립기념관에 갔을 때, 수학 여행 온 수천의 일본 학생들을 만났다. 지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희희낙락하는 저들이 식민지에 놀러온 기분에 젖지는 않을까, 저들 나라 환경 변화에 휘둘려 부조리한 과거를 신봉하면 어찌하나, 은근히 걱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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