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 '생활의 길잡이'와 중학교 1학년 도덕 교사용 지도서에 소개된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의 '오체불만족'이 그것이다. 그가 일본인이면 어떻고 한국인이면 어떤가. 일본열도뿐만 아니라 세계를 감동에 젖게 한 오토다케.
그가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는 늘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장애 자체가 이미 사회 생활에 장애가 되는 우리 처지에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농구를 하던 모습은 뭉클함을 넘어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비단 오토다케의 몸 때문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어떤 외경일는지도 모른다. 팔, 다리, 머리 등 온몸이 온전한 아기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체만족(五體滿足)이란 말을 쓰는 일본인의 기준에서 보면 오토다케는 오체불만족은커녕 사지가 없다. 날 때부터 팔 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절단으로 겨우 10cm 남짓 자랐을 뿐.
마음먹기 따라서는 오체에 만족이든 불만족이든 인생의 행복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상을 그는 불완전한 몸으로 완전하게 심어 주고 있다.
육신의 눈 대신 영혼의 눈을 뜬 헬렌 켈러 여사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장애인의 재활은 지상의 어느 이야기보다 감동적이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인기가수 클론의 강원래와 그 애인의 러브 스토리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시각장애인 강영우 씨는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맹인 박사(교육학)가 되어 일리노이대학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도 도전 또 도전으로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성공하고는, 정상에 오르는 순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노라고 회상한 미국의 한 대학교수 얘기도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물론 오토다케에게도 남 모르는 실의와 좌절의 세월이 있었다. 르완다 학살 현장에서 시체를 누비며 취재한 카메라 기자가 오토다케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에 그는 외친다.
"아니, 내가 시체보다도 진귀했다는 것인가! 그런 내 모습이 수많은 시체가 굴러다니는 장면보다도 더 큰 충격을 안겨 준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자신과의, 세상과의 싸움에서 거뜬히 승리했다.
나는 그의 소식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듣는다. 휠체어를 타고 방송 리포터 하기가 힘겹다는 얘기도,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번에는 오토다케의 아름다운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역시 절망은 희망의, 불행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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