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하나는 홍콩에서 부인에게 구타당했다고 신고한 남편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발적으로 휘두르는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치밀한 계산 아래 구타한다는 사실도 흥밋거리다. 남편이 없는 여성이 오래 산다는 한 조사 결과가 생각난다.
멜 깁슨의 영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에서처럼 남자들이 투시력을 갖는다면 어떨까? 여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남자를 원한다는 것인데, 입장이 바뀌어도 답은 같으리라 본다.
남녀의 성 구분이나 성 역할은 지금도 유용할까? 잠깐, 마거릿 미드의 연구를 재독(再讀)하면, 참블리 부족들은 여성이 고기잡이, 수공업 등 경제의 실권을 쥐고 있다. 남자들은 몸치장이나 하고 여자들에게서 칭찬이나 초대, 선물을 받으려 한다. 여성적'이라 간주되는, 말다툼하고 토라지는 감정의 기복도 남자들이 보다 심했다. 그들 문화권에서 바라보면, 아름다울 권리를 주장하는 남자들로 넘쳐나는 코디네이션 강좌, 팬티 전문점에 남자용 거들팬티가 내걸린 것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어느 여성종교인 모임이 있었다. 자리에 나온 원불교 정녀는 자녀가 둘이면 한 자녀는 아버지 성을, 다른 자녀는 어머니 성을 따르도록 한 소태산의 급진주의를 소개했다. 또 비구니스님은 해탈의 능력에서의 남녀 차별을 부인하며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는 소승불교의 주장을 반박한다.
이제 '여비서 급구', '용모 준수한 미혼여성' 등의 광고는 남녀차별 금지조항에 딱 걸린다. 결혼 후에 계속 근무할 것인가 따위의 질문도 금기어다. 힘 세고 빠른 건 남자의 전유물이고, 여자는 감탄의 눈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풍경은 옛 이야기가 돼버렸다. 머잖아 아담의 갈비뼈 이론 따위는 잘 먹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한자 교재에서 '편안할 안(安)'자의 제자 원리를 여자가 집에 있으니 편안하다고 설명한 걸 보니 새삼스럽다. 이런 인식구조의 차이까지, 남자에겐 '세계가 집'이고 여자에겐 '집이 세계'이던 시절의 잔재가 아닌가 하여 떨떠름하다.
'여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실상 이것은 멜 깁슨이 아니라 프로이트가 먼저 제기한 지난 세기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프로이트가 다시 살아난다면 이런 이런 질문을 던질 것만 같다.
'남자들은 또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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