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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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보다 빛나는 조연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우미관의 '조직'이건 궁중이건 상전에 대한 복종심을 보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러한 복종이 정당하다거나 부러워서가 절대 아니다. 그냥,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태에 대한 반성이자 회의라고 해두자.

조선왕조 마지막 상궁인 성옥염 상궁이 생각난다. 김명길, 박창복 상궁과 함께 순종왕후 윤비를 끝까지 모신 성 상궁은 윤비의 3년상을 마치고 창덕궁 낙선재에서 나와 쓸쓸히 살다 갔다.

남긴 재산이라곤 '몸뻬'로 불리는 허드렛바지 2벌, 내의 몇벌과 2만 3,000원이 든 낡아빠진 지갑이 전부였다. "저 세상에서도 윤비를 모실 수 있도록 해달라"는 유언으로 의리 없는 세태를 감동시켰던 고인의 위패는 윤비의 위패가 모셔진 강릉 백운사에 함께 있다.

궁중의 내명부(內命婦)라면 여관(女官)으로 품계가 있는 부인이다. 참고로, 임금과 가까운 궁녀들은 빈, 귀인, 소의, 숙의, 소용, 숙용, 소원 등으로 정1품에서 종4품까지였다. 상궁은 정5품으로 사무관 궁녀쯤 된다. 오랜 항아님 노릇 끝에 상궁이 되면 각심이라는 비녀와 침모가 한 명씩 딸릴 정도다.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숙종의 계비)의 궁녀였다.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모함에 걸려 폐비됐을 때도 계속 울먹이며 잘 먹지 않으면서 상전을 수족처럼 모셨다. 인현황후의 생일 전야, 교교한 달밤에 아궁이에 불을 때다 궁궐 뒤뜰을 산책하던 왕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게 된다.

드라마에서도 극중 조연에 불과한 상궁들이 다시 뜬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조선왕조 500년, 용의 눈물 등에 상궁 전문으로 출연했으며 여인천하에서 큰방상궁 역을 맡은 김상궁 서영애의 인기를 기억할 것이다. 문정왕후에 딸린 큰상궁 한영숙은 연기 경력 31년만에 팬클럽까지 결성돼 뒤늦은 전성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은 얼마든지 더 있다. 잠시 한 눈을 좀 팔긴 했어도 한국영화를 자신이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이분한 명계남, 요즘 하는 '대망'에서도 익살맞은 애드리브가 일품인 임현식도 뺄 수 없다. 물론 숱한 노력의 결과다.

주연이긴 하지만 반칙왕 송강호가 대역을 쓰지 않기까지 하루 6시간의 피나는 레슬링 훈련이 숨어 있었다. 우리 실생활에서도 배역은 작지만 기본기가 잘 갖춰진 관록 있는 사람들이 사회를 빛낸다. 명철한 대통령, 유능한 사장 한 사람만 갖고는 좋은 나라, 좋은 회사가 될 수 없다.

지금 새 당선자 주변으로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일을 하는 사람과 공이 돌아가는 사람. 둘 중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 그 곳은 경쟁이 그리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와닿는 인디라 간디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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