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을 되짚으면 호형호제하던 태종과 이숙번, 성종과 김종직 콤비가 떠오른다. 궁궐 문지기에서 수양대군의 꾀주머니 구실을 잘해 영의정까지 올랐지만 부관참시로 끝막음한 한명회, 변절자에서 명재상으로 변신한 황희도 빼놓을 수 없다.
조광조는 똑똑했으나 너무 앞질러간 개혁이 화를 자초해 목숨도 개혁의 꿈도 접어야 했다. 개혁에는 완급과 타이밍이 필요하다.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포퓰리즘도 안 된다.
좀 더 올라가 최응을 보자. 신기하게도 이 어린 채식주의자는 권력 가까이에서 권력에 물들지 않았다. 그 없는 고려 473년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는 주군의 신임보다 백성의 희망을 읽으려 했다.
"대중의 지지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옵니다. 선함으로써 하늘의 도움을 받고, 포용력으로써 백성을 사랑하고, 군자와 소인을 가려 등용할 줄 알아야 나라를 오래 보전할 수 있사옵니다."
열네 살의 신동은 이렇듯 총명했다. 가정법이 필요 없는 게 역사라지만, 궁예가 그의 말만 들었던들 이틀 밤낮 산속을 울부짖고 헤매며 곡식을 훔쳐 먹다 비참하게 맞아 죽진 않았을 것이다. 쿠데타에 성공한 왕건도 사람 보는 눈이 있어 행정능력이 뛰어난 스무 살 최응을 중용한다.
만약 성종에게 최승로가 없었던들 그처럼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최충 없는 문종도 없다. 반면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잘못 쓴 인종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참모를 잘못 쓴 탓이다.
언제 봐도 무협지 같은 춘추전국시대, 변방 오랑캐에서 중원에 입성한 초장왕,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원조인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의 스토리는 그 압권이다. 이 때도 책사들은 맹활약을 벌였다. 사마천이 "그가 살아있다면 그의 마부가 되어도 좋다"고 찬탄하던 제나라 안영은 특히 명제상이다. 하지만 누구니 해도 천하의 책사는 제갈공명일 것이다.
머리를 잘 빌리는 것도 능력이다. 선거에서 드러난 시대정신을 맑히고 밝힐 참모가 중요하다. 정말로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면 공로에 친분에 연연하지 말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는 과단성을 가져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마음 먹기에 따라 그는 정치적으로 '핸즈 프리' 상태다. 그가 영광을 남길 것인지 오욕을 남길 것인지는 오로지 그에게 달려 있고 그를 보좌할 책사에 달려 있다. 따라 다니면서 신발끈이라도 묶어주고 싶은 지혜로운 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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