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대통령 사적지는 88곳, 게티즈버그 등 전적지를 합하면 100곳이 훨씬 넘는다. 독립선언에서 연방헌법 제정까지의 과도기를 거친 이래 2세기 넘도록 배출한 대통령의 사적지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치적은 치적인 대로, 실정은 실정대로, 또 가릴 건 가리고, 교훈으로 삼을 건 삼는 그들이다. 전직 대통령 기념관인지 도서관인지 하나 갖고 왈가왈부만 거듭하는 우리와는 영 딴판이 아닐 수 없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민주주의의 전당인 러시모어의 큰 바위 얼굴. 초등학교 때 배웠음직한 이 거대한 흉상은 미국 중부 대평원 사우스 다코다주 서남부에 위치한 블랙힐즈 산맥의 산기슭에 새겨져 있다. 해발 1700m인 이곳 바위산엔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제퍼슨, 미합중국 만들기와 국제세력화에 이바지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이 모셔졌다. 실로 죽을뻔살 뻔한 공력으로 이룬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였다.
이걸 본 사람들은 너무도 정교로운 링컨의 얼굴에 그만 기가 질려버리고 만다. 금방이라도 입을 열어 게티즈버그 연설이 튀어나올 것 같다. 조각가 거츤 보글럼이 일흔 노구를 이끌고 완공 7개월을 앞두고 죽자 그의 아들 링컨 보글럼이 대를 이어 이 작업을 완성했다. 14년(1927∼1941)만에 끝마친 이 엄청난 대작은 세기를 넘어 역사의 능선을 타고 길이길이 펼쳐지리라는 확신이며 의지의 표상인 것이다.
미국 대통령제는 우리 대통령제의 모델이다. 당선 확정 후 당사에서 명륜동 자택으로 이동하는 노무현 당선자를 보고 연상했던 건 거리 곳곳에서 무도회와 행진을 벌이던 미국인들이었다. 취임식을 하러 마차를 타고 버지니아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마을을 지날 때마다 연설하고 기병대가 행진하는 건국 이래의 전통이 생각났다.
큰 바위 얼굴은 그저 장엄한 돌산이 아니었다. 비바람에 조금씩 닳아 없어질지라도 영구히 보존되리라는 민주주의에의 자긍심이었다. 그들 가슴마다 살아 숨쉬는 뭉클한 대통령 문화가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누가 집권하든 누구를 지지했건 박수갈채와 불꽃놀이 속에 임기를 마치는 웅숭깊은 지도자상이 아, 진정으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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