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곳에도 없는 나라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아무 곳에도 없는 나라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경이로운 세상이다. 가상현실 속 이성과의 사랑은 영화 아닌 현실의 일이 됐다. 실제로 결혼 6년차인 남자가 여대생과 인터넷상에 각각 분신(아바타)을 만들어 살림을 차리고 동거하는 '이중생활'을 즐기다가 들통나서 끝내 현실의 아내와 이혼한 경우가 있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세계 제일의 전자개표 수준에서 보았듯이 문명의 찬란한 성과물이면서 무인지경으로 악을 조장하는 문명의 쓰레기이기도 하다. 말이 좋아 '컴퓨토피아'니 '사이버토피아'지 어느 때고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세상살이의 파고가 넘기 힘들수록 어떤 이상향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유토피아를 갈구한다. 일상 쓰는 말에 엑스피아월드가 그렇고, 테크노피아와 에너토피아, 아파트형 공장인 팩토피아, 미래의 꿈을 지하세계에서 찾는다는 지오토피아도 그러한 갈망의 일단이다.

책방 좀 크게 만들고는 북토피아요, 양로원 같은 걸 구상하면서 실버토피아라고 호들갑을 떤다. 이밖에 게임토피아, 홈토피아, 시네토피아 등 온통 유토피아 타령이다. 방금 받아본 잡지에는 문학과 유토피아를 합성한 '리토피아(litopia)'라는 말이 나온다. 문학으로 행복한 세상을 가꾸겠다는 의지라 한다.

심지어 투기조차도 유토피아적 열망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시장에 투기꾼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경제 정의가 실현될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병목현상으로 더 잦은 경제 위기가 올 수도 있다. 그래서 투기는 실패한 투자, 투자는 성공한 투기라 일컬어진다.

정권이나 정부의 교체 또는 이데올로기의 종점도 마찬가지로,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 아무 곳에도 없는 나라라는 뜻 그대로다. 이 말을 만든 토머스 모어는 국왕 헨리 8세와 시녀 앙 브린의 결혼을 반대한 죄목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가 지금 살아난다면 이 말을 거듭 부인할 것이다.

"찍어봐야 자기네들만 잘 사는데 뭐하러 찍어요."
"그러니까 잘 찍어야죠."
중앙시장 먹자골목에서 흘려 들은 어느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대화다. 예상대로 대전·충남의 투표율은 저조했다. 전국 최저다.

물론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유토피아가 실현된다고 기대하는 국민은 없을 줄 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방명록을 쓰면서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적고는 한다. 어쨌든 그가 당선됐고 나는 그의 '사회연대'에 관심이 많다. 경제를 자유시장의 원리로 키우되 여기서 도태하는 서민들을 시장으로 되돌린다는 얘기다. 함께 잘사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다. 유토피아는 아니라도 말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