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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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공즉시색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극장가에 10대, 20대, 70대의 성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란히 걸렸다. 중학생들의 성적 성장기를 다룬 '몽정기', 대학생들의 질펀한 섹스 코미디인 '색즉시공', 노년의 성과 사랑을 다룬 '죽어도 좋아'가 호형호제하며 박스 오피스를 점거하고 있다. 영화도 섹스도 레저인 듯 게임인 듯 새털처럼 가붓해졌다. 모두들 성적인 것들에 '아우성'이다.

성은 원래 합법도 비합법도 아니며, 도덕도 비도덕도 아니거늘 왜 이러는가. 당당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고, 비성비속(非聖非俗)의, 아니 성스럽게 하면 성스럽고 속되자면 한없이 속된 것 아니던가.

이성교제를 음란한 행위로 간주하고 처벌한 외국의 해군사관학교가 있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마스터베이션 체험자는 입학 자격이 취소되고 몽정조차 학업 능률 저하를 구실로 엄벌에 처해졌다. 행여 '몽정기' 속의 상황이 도래했다간 전원 퇴학 맞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많은 문제가 파생됐다.

성(性)이라는 글자만 놓고 봐도 마음(心)이 저절로 생기는(生) 것이지 억지로 꿰맞춰 만든 게 아니다. 사실, 시대와 사회의 이중성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성의 신비, 사랑의 순수 따위는 개념조차 어렴풋한 그들에게 성은 팔려고 바둥대는 상품이 아니라는 점과 정신을 경멸하는 '육체주의는 없다'는 선언이 먹히기라도 하면 절반은 성공이다.

한 인격체로서 섹스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10대들은 어른들을 향해 "낙태 건수의 30퍼센트가 10대라면 70퍼센트는 당신네 어른들 아니냐"고 항변한다. '영계'나 찾아다니는 당신들의 성 문제부터 해결하고 우리들의 성에 대해 간섭하라며 갇힌 사고와 권력을 비웃기도 한다. 보리밭의 전설이나 두견새 우는 사연은 그들을 그저 졸리게 할 뿐이다.

우리 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주 성적으로만 길들여지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젖은 '소나기'의 소년 소녀를 본다면 여전히 잔잔하고 맑은 서정으로 남아 있을지 의문이다. 사랑은 없고 욕망만이 넘실대며 성은 이미 완전하고도 도도한 세계를 이루었다. 그래도 자기 몸과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건 자유가 아니라는 것, 시대가 변하고 가치관이 달라져도 순결과 순수함은 영롱하게 빛난다는 의식만은 심어줘야 한다.

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잘못된 지(知)의 활용이다. 스펀지 같은 청소년기에는 미지와 상상의 세계로 남아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전국의 수백 개 상영관에 걸려 있는 화장실 유머를 연상시키는 영화들, 그 안에 영화를 연상시키는 세태가 들어 있지 않을까?

나는 경험하지 않은 얘기는 잘 쓰지 않는다. '색즉시공'이란 영화도 물론 봤다. 다만 주인공이 여자를 보다가 밥알을 품는 장면, 술 먹고 토하는 장면, 이상한 걸로 만든 달걀 프라이를 보고 그만 속이 뒤집혀 나오고 말았다. 웬만하면 끝까지 보는데 그날따라 나는 배알이를 하고 있어 속이 몹시 메스껍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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