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든 뛰어가든 아름다운 삶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있다. 꼭 남보다 앞서 갈 필요도 없고 모두가 선수가 될 수도 없다.
억지로 선수로 만들려고 해서도 안 된다. '게으름의 즐거움에 관해'를 쓴 페터 악스트는 해먹에서 빈둥거리거나 낮잠 자는 사람이 장수한다는 지론을 편다. 장거리 경주는 에너지를 소진해 기억상실에 걸리기 쉽고 일찍 늙는다는 것이다. 유사한 주장은 많다.
나는 걷기 예찬론자다. 완벽하게 걷는 행복을 가르쳐준 사부(師父) 이브 파칼레처럼 '울진과 영덕 근처를', 혹은 '윤선도의 피부 속으로' 거닐고, 걷고, 기어오르고 싶다. 소원도, 길에서 운동화를 갈아 신으며 걸어서 세계 일주하는 것이다. 산에 올라 두통이 가실 때마다 까마득한 옛날 그곳이 본디 우리들의 고향이었음을 느낀다면 그만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인생이 나그네길이라면 걷는 것이 적격이다. 물론 장거리란 점에서는 종종 마라톤에 비유되곤 한다. 하기야 이봉주 선수도 올봄 마라톤대회 현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면서 인생행로를 연상시켰다. 어제 러닝 머신(트레드밀) 위에서 결혼식을 올린, 홈쇼핑 광고 진행자인 신랑도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그리고 어제는 또 살아 있는 전설이었던 큰 별이 졌다. 손기정 옹은 지난 세기 한국 스포츠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의 주인공이다. 일장기 말소 사건도 들먹이지 않을 수 없다. '빈처', '운수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술 권하는 사회'를 쓴 현진건이 동아일보 사회부장 재직시 이 일을 주도해 옥살이를 했다.
운명인가, 황영조가 몬주익에서 태극마크의 한을 푼 1992년의 그날은 손 옹이 금메달을 딸 때부터 기산해 정확히 56년 후의 같은날 같은시였다. 바르셀로나를 찾고 털썩 주저앉았던 손 옹이 눈에 선하다.
그렇잖아도 지난 주말 남승룡 마라톤대회를 보면서 병상에도 위독하다는 손 옹 생각이 났고, 한창때의 남승룡 선수가 마당에서 철봉을 하는 모습을 자주 지켜봤다는 선친 생각도 자주 났다. 함께 출전해 손 옹의 페이스 메이커로서 동메달을 딴 남 옹은 손 옹보다 1년 먼저 작고했다.
마라톤은 힘들다. 하지만 인생의 여로는 백 리 남짓 되는 마라톤의 경기로보다도 외려 멀고 험할지 모른다.
누구나 몇 번의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게 마련이지만 풀코스를 다 뛰어야 한다. 완급을 조절해야지 처음부터 힘을 소진해버려서도 안 된다. 잘 뛰다가 중도 하차는 금물이다. 막판 스퍼트도 유용하다.
손 옹이 우리에게 남겨준 삶의 지혜는 아마 이런 것이지 않을까? 고인의 위대한 일생에 고개 숙이며 삼가 명복을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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