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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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와 나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나이를 먹어간다는 징후일까? 한낱 미신으로 치부하던 하찮은 것들이 귀하게 여겨지며 우연만도 못한 인연일지라도 챙기고 싶어진다.

밤늦은 시간, 아는 이가 보잔다. 동갑내기인 그가 치는 모처럼만의 통기타가 반갑고 희미하게 웅얼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는 더 반가웠다.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그 무슨 뜻이라 해도 조용히 따르리오.'

6·29선언이 있던 음울한 그해 만난 이 노래. 데뷔작이 유작이 된 유재하의 것이다. 유재하는 1987년 스물다섯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했다. 미발표곡 '비애'는 '누구 없소'의 한영애가 대신 불렀다.

마침 음악장학생 선발을 겸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의 1차 예선 통과자가 오늘 발표됐다. 행사를 주관한 유재하 음악장학회는 황량한 탄광촌에서 생겼다. 어느 해 겨울, 필자가 머물던 소읍(小邑)이기도 하다. 그의 부친 유일청 사장이 경영하던 유창물산 황지광업소가 어렴풋하다. 초장부터 인연 운운한 건 그래서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넓다는 세종로에서 재하의 친형인 유청하를 만나, 피차 안주만 축내고 헤어졌다. 나와는 동인(同人)으로 안동 하회마을 태생의 시인이다. 그가 자신의 책 '삼부자의 노래'를 보내왔는데 2부 '사랑하기 때문에'편은 시종일관 동생 타령이었다.

편지와 동봉해준 가족사적 고백과 그의 시 '바위'의 '눈물이 나더라도 소리내어 울어서는 안 된다'를 외도록 읽으며 두어 차례 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가수 이문세는 "임마, 유재하"로 시작하는 추모 글을 통해 스튜디오, 거리에서, 훈훈한 포장마차에서의 기억들을 더듬는다. 갈대가 핀 강변을 배경으로 한 담백한 수채화 같은 재하, 유재하.
가슴저린 그의 노래가 폐부 깊숙이 꽂힌다. 여지껏 젊은이들의 애창곡이라니 때론 여론조사가 고맙다. 늘 신선하고 늘 맑은 서정성 하나만으로도 풍진 세계의 위안이기에 족하잖은가. 그는 갔지만 살아 있다.

이쯤이면 나와 유재하도 무슨 범상찮은 인연임이 분명하다. 몇 겁의 인연인지 나도 갑사 장곡 스님에게 물어 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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