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나뭇잎으로 구르는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이 시를 쓴 구르몽은 필화(筆禍)를 겪고 병고에 신음하다 요절했다. 필화 얘기를 꺼내자니, 더구나 가을이어서 그런지 유독 생각난다.
하긴 신분제를 위협하는 홍길동전, 왕조체제를 부정하는 정감록도 금서였고 아이들 입문서인 소학(小學)마저 조광조의 개혁 정책 시절에는 이념서적이었다. 춘원 이광수의 '흙'은 단지 널리 읽힌다는 이유로 일제로부터 발매 금지와 회수 처분을 받는 어이없는 일을 겪기도 했다.
가까이는 유신정권의 코털을 건드린 조세희의 '난쏘공'은 여전히 대학 신입생들의 필독서다. 교과서에 실린 유홍준의 '월출산과 남도의 봄',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의 노래'를 놓고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던 게 겨우 몇 해 전이다. 사상통제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고 유형무형으로 아직 남아 있다.
서가를 정리할 때마다 버릴까 버릴까 하다가 둔 책이 있다. 책의 논리나 내용은 마음에 안 들지만 혹시 자료로서의 가치는 있겠다고 여긴 때문이다. 우익적 시각으로 씌어진 이 책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아예 "빨치산들은 미화시킬 저의를 갖고 있었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이제 이 책을 버려도 될 것 같다.
조정래는 20세기 마지막 필화사건으로 21세기가 되도록 법정을 들락거렸다. 대학생과 노동자가 읽으면 이적표현물이 된다는 묘한 수사 결론을 달고서 말이다.
이데올로기가 빚은 참상을 그린 이 작품 '태백산맥'은 1983년 9월의 어둠 속에서 시작해 1989년 9월의 혼미 속에 1만 6,500매로 끝냈다. 초등 학교 다니던 아들이 고등 학생이 될 시간 동안 씌어진 것이다. 여기에 일제하 민족 수난사라 할 '아리랑'은 2만 장, 한국 현대사를 다룬 '한강' 1만 5,000장을 더하면 도합 5만 1,500장, 쌓으면 5m 50㎝ 높이다.
그의 이 세 가지 책들이 판매량 1,000만 부를 돌파했다. 말이 그렇지 엄청난 분량이다. '태백산맥' 550만 부, '아리랑' 350만 부, '한강' 150만 부를 합산해서다. "미치고 펄쩍 뛰겠더라"던 불온한 기운을 딛고 선 작가정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책의 시대가 끝나지 않고 '종이장사'가 된 데 대해서도 깊은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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