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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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살아났다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25년째 읽고 있지만 덜 읽은 책이 있다. 선친이 사 주신 '노벨상문학대전집'. 볼륨으로나 내용으로 보나 그야말로 대전집이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읽는데, 읽다가 졸리면 그걸 베고 잠이 든다.

부피도 목침 높이로 두툼해 적격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가와바다 야스나리, 윌리엄 포크너…… 몇 번이고 내 베개가 돼보지 않은 책이 없다. 다독가인 김윤식 씨나 달변의 이어령 씨도 이 책만은 다 못 읽었을 거라는 혼잣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 있다. 2차대전에 참전한 남자 선수들을 대신해 만든 여자 프로야구 리그를 다룬 미국영화 제명이다. 그 본래 내용이야 어쨌건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정치인이나 관료의 행태를 보거나 관객과 너무 거리가 먼 작품이나 작풍(作風)일 때도 우리는 이 표현을 쓰곤 한다.

탄탄한 작품성을 인정받고 막상 뚜껑이 열리면 참패한 수작들이 있다. '와라나고' 계열은 그 단적인 예다. 오지혜의 청승이 고단한 일상을 위로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썰렁함이 돋보인 '라이방', 우수에 찬 '나비', 여자들의 성장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등은 관객 몇 천 또는 몇 만 동원에 그친 흥행 참패작들이다.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이이가."
"자고 갈래요? 라면 먹고 갈래요?"
영화 대사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 경우인데, 영화 '고양이……'는 "○○를 부탁해" 투의 유행어를 양산시켰다.

때맞춰 고양이 살리기 운동도 일어났다. 인천 같은 경우, 시민 모임까지 생겨 종영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이변으로 이어졌고 가수 조영남이 앞장섰다. 커머셜 또는 아트 커머셜(상업성이 가미된 작가영화)의 높다란 벽을 허물진 못했어도 말이다.
감독은 고양이의 본성에서 세상을 향해 막 뛰쳐나가려는 처녀의 이미지를 포착했다. 동감이다. 애완용이기엔 야성이 강한 고양이와 스무 살 처녀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다.

참다 못한 고양이가 밖으로 나돌더니 독일 쾰른에서 여성영화제 데뷔상을 수상했다. 많지는 않지만(약 245만원) 상금도 받았다. 이쯤에서 고양이가 살아났으면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세상에 예뻐서 거저 주는 상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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