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언어)에 갇혀 사는 인간들, 온통 신문지로 뒤덮인 무대, 먹고 놀기에 바쁜 한량이 갑자기 교황이 되고 목에 난 부스럼을 매독으로 착각한다면? 예술의 전당에 올린 앙드레 지드의 원작 '교황청의 지하도'란 작품이다. 초월적인 자유행동을 묻는 묵직한 주제와 달리 캐릭터들은 코믹하기 그지없다.
이런 일련의 시도들에서 '가톨릭'의 가장 가톨릭다움을 발견한다. 가톨릭은 '보편적인, 포용적인, 관대한'의 사전적 의미도 있다. 지금은 사라진, 전성기의 탈레반 같았으면 상대에 로켓포를 쏘았을 것이다. 구부정한 노구를 이끌고 타종교와 화해를 시도하는 교황에게서, 수녀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법정 스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깊은 감명을 받는다. 김수환 추기경은 도올의 강의에 기꺼이 출연해 '충서'를 환기시킨 바 있다. 또, 지금 저명한 영성주의 명상가가 명동성당에서 강의하고 있고, 기독교나 원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간 대화가 열린다.
나는 여기서 결코 특정 종교나 종파를 두둔하고자 함은 아니다. 중요한 건 훼손할 수 없는 화해와 관용의 정신이다. 조간 신문에선 아프리카의 한 가톨릭 대주교가 한국 여성과 결혼했다는 통일교 합동 결혼식 소식을 다루고 있다. 마땅히 그는 성직자의 결혼을 금하는 교회법에 따라 파문될 것이다.
누구든 자기 소속처의 법규와 율례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보편성 안에 늘 따라붙는 특수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약간의 파격은 때로 멋스럽다. 이메일과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사이버 예배란 것도 그렇다. 한쪽에서는 세계에서 젖가슴이 가장 아름답다는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가 이브로 등장하며 누드까지 선보일지 모를 패션잡지화된 성경을 만든다고 법석이다.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맞추려는 고육책인데, 벽장 속의 성경을 식탁 위로 끌어내릴 수만 있다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방법이라고 본다. 같은 이유에서 댄스그룹 god의 '어머님께', 패닉의 '왼손잡이' 등 가요가 중1 부교재인 '우리말 우리글'에 실린 허용적 자세를 환영한다.
얼마간의 파격을 포용하는 자세가 공자님의 인이고, 하나님(하느님)의 사랑이고, 부처님의 자비일 것이다. 지역 갈등, 집단 이기주의, 우리 사회에 내재된 모든 난국을 이러한 보편 정신에 입각해 풀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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