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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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한국노인문제연구소 강지현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하철 안이었다. 나는 다짜고짜로 물었다. "강 박사님, 지금도 노인 문제의 절반이 성이라는 소신엔 변함이 없으신가요?" 그러자 강 박사가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누가 그럽디까?"라며 펄펄 뛰었다. "어? 분명히 봤는데요." 했더니 그런 말이라면 필시 홍미령 박사가 했을 거라고 지목해줬다.

그렇게 홍 박사와 40여분간 대화를 나누게 됐다. 말이 40분이지 너끈히 보통사람 하루 얘기 분량이다. 청산유수인 그의 말은 마치 압축파일 같다. 나는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 얘기로 말문을 텄다.

홍 박사는 실제 주인공이자 영화 속 주인공인 일흔세살의 주인공 박치규 할아버지를 노인대학에서 만났다. 섹스신에 대해 "감독이 이유가 있어서 넣었을 것"이라던 할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이나 또 영화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더라고 전한다. 그런데 "노인들의 진실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핵심"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박진표 감독의 고집에 이르러선 혀를 내둘렀다.

"(영화를) 대충 보았지만 제가 봐도 잘랐으면 했던 부분이었어요. 침실 안(성기까지 노출되는 7분간의 롱테이크 정사신을 말함)에서라면 아름답겠지만 영화라는 매체로서는 좀 과하다고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홍박사는 노년의 성을 긍정적으로 띄웠다는 점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듯했다. 결국 문제가 된 부분은 화면 조도를 어둠침침하게 낮춤으로써 가까스로 턱걸이를 했다. 박 감독에게 "잘라라"는 눈치를 보였지만, 오로지 "예술의 '예'자도 모르는 소리"로 치부하며 씨도 안 먹히더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배우자와 사별하고 동거하는 노부부가 "죽어도 좋아"를 연발하며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그림은 생경하면서도 멋쩍다. 홍 박사라고 어찌 호기심이 없었을까, 일흔한살인 이순례 할머니에게 물었단다. "정말 죽어도 좋을만치 그렇게 좋으세요?" 대답은 머뭇거림 없는 "예스"였다. 지푸라기 하나 들어올릴 힘이면 '가능하다'는 말씀.

이들 박치규·이순례 실버부부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교육적 충격'은 대단하다. 영화의 작품성이나 장면장면의 진정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노인의 삶을, 노인의 성이라는 금단의 열매 같은 테마를 공론화했다는 공만은 인정되기 때문이다.

홍 박사의 말마따나 "우린 너무 터뷰시하고만" 있었다. 홀로 된 노인의 십중팔구(90%)가 이성교제를 원하는데도, 동성 친구 다섯보다는 이성 친구 한 명이 커다란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 준다는 보고가 있는데도.

영화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늙은 연인들의 성 이상일지도 모른다. 뭔가 양성화된 장이 있어야 한다는 게 홍 박사의 줄기찬 지론이고 필자의 지론이기도 하다.

"외국에선 칠십 노인들이 왕성한 성생활을 하고 있어요. 보조기구도 많이 나왔고요."
대화 도중 "노인문제의 절반이 성"이라는 말을 두 번 들었던 것 같다. 강박사 말이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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