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이 시대의 유령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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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이 시대의 유령은 무엇일까

-극단 새벽의 <유령> 공연을 보고

  • 승인 2019-04-04 16:58
  • 신문게재 2019-04-05 12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장수익
장수익 한남대 교수
대전시 중구의 한 소극장은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만석이 된 것부터 놀라웠고,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에도 관객들이 연극에 집중하는 것도 감동스러웠다. 원작의 진의를 살려 새롭게 번역한 대본과 아울러 그 많은(!) 관념적인 대사를 너끈히 소화하는 배우들, 연극의 모든 면을 이끌었을 연출가의 솜씨가 어우러져 연극을 보는 즐거움을 듬뿍 느낄 수 있었다.

다른 분야도 대개 그렇지만 지방의 문화계 현실은 어둡다. 빈약한 재정과 시설에 원활하지 못한 지원, 무엇보다 필요하지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관심. 그러나 그 속에도 희망이 있고 보람이 있음을 극단 새벽의 <유령> 공연을 통해 보았다.

<유령>은 헨리크 입센이 1881년 발표한 자연주의 비극으로 발표 당시부터 막장 드라마 같은 줄거리로 논란이 되었던 작품이다. 요즘의 드라마에서는 흔해졌지만, '알고 보니 오빠'라는 비밀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전개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주목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부정하는 새로운 사상에 있었다. 그러한 사상은 남편에 순종하여 가정을 지키는 것이 부인의 의무라는 가부장적 가치관을 무참히 깨뜨리는 것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 가치관을 깨뜨리는 주인공 알빙 부인이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는 데 이 작품의 '냉정한 현실주의'가 있다. 오히려 그녀는 남편처럼 방탕한 아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게다가 그 아들이 남편의 성병을 유전으로 물려받아 죽어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유령에 둘러싸여 있다고. 낡은 시대의 유령은 새로운 꿈을 꾸는 이를 붙잡아 몰락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힘을 여전히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을 보면서 필자는 이 시대의 유령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혹자는 그것이 흔히 '적폐'라고 부르는 부패를 가리킨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입센은 다르게 생각한 것 같다. 이 작품은 "나의 욕망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비도덕도 허용된다."는 이기적인 마음가짐이 바로 유령의 근거임을 보여준다. 당장의 욕망에 매달렸던 방탕한 남편뿐만 아니라 목숨을 이으려 이복 여동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붙잡으려는 아들, 새로운 사상으로 살기를 염원하면서도 남편의 혼외녀를 하녀로 들였던 알빙 부인 모두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았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을 남성중심적인 가부장 질서를 비판하는 것으로만 보면 다소 폭 좁은 감상이 된다. 오히려 낡은 질서가 이기심 충족을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견인력을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거부할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유령을 없애는 길이라는 것이 이 작품이 오늘에 주는 교훈일 것이다.

이처럼 여러 모로 의미가 있는 <유령>의 공연은 일단 끝났지만 2차 공연이 3월 28일부터 3일간 대덕문예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이어진다고 한다. 고전의 품격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이 공연이 또다시 성황을 이루어 어두운 지방 문화계를 밝히는 계기가 되기 바라며, 어려움 속에서도 지방 문화를 이끌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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