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蘭(난)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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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蘭(난)에게 길을 묻다

윤여환 충남대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 승인 2019-04-01 10:02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윤여환 충남대 교수
2500여 년 전 공자(孔子)는 고고한 자태로 홀로 핀 한그루의 난초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는데 그것이 공곡유란(空谷幽蘭) 의란조(倚蘭操)의 고사이다.

공자는 생애 초반 30여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면서 72명의 제후들을 만나 왕도정치의 이념을 설파하지만, 패도정치의 무력이 지배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어느 제후도 덕으로 세상을 다스리자는 공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참담한 심정으로 고향인 노나라로 향하던 공자는 어느 인적 없는 빈 골짜기에서 홀로 피어 있는 난(蘭)을 만나게 된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공곡(空谷)에서 홀로 핀 유란(幽蘭)의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공자는 깊이 탄식한다. 잡초 속에 묻힌 애처로운 난초의 모습에서 자신의 처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공자는 인적 없는 빈 골짜기에서 운명적으로 난을 만나 크게 깨달음을 얻으며 그 뜻을 <의난조>라는 시로 읊고 거문고로 노래했다.

그 후 난초가 군자의 품격을 가진 식물로 인식되면서 난초의 향기와 고귀함은 공자로부터 나타나지만 충성심과 절개의 상징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 굴원(屈原)으로부터 시작된다.

사군자그림에서 난의 꽃술을 그릴 때 마음 심(心)자를 약자로 찍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술을 뜻하는 한자가 꽃술 예(예)자인데 '艸(풀 초)변에 心(마음 심)이 3개나 들어 있다. 이것을 보면 사군자그림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난초는 사군자의 하나로서 오랫동안 시인묵객의 사랑을 받아 왔으며, 한시에서는 난조(蘭藻) ·난질(蘭質) ·난궁(蘭宮) 등의 시어(詩語)를 사용하여 난초를 귀녀(貴女) 또는 우아한 미녀라고 하는 우의적 표현을 썼다. '난혜(蘭蕙)의 질(質)'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의미이다. 또 왕비의 궁전을 난전(蘭殿)이라 하고 미인의 침실을 난방(蘭房) 또는 난실(蘭室)이라고 하는 데서도 이러한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정에 관해 언급한 '역경-계사전(易經 繫辭傳)'에서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이로움은 쇠도 끊는다. 마음이 같은 사람의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고 하여 금란(金蘭)이라는 말이 처음 생겼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는 '세설신어(世說新語)'에서 친구인 혜강과 완적을 단 한번 만난 것만으로 금란지교(金蘭之交)를 맺었다고 한다. 또 백낙천의 시에도 친구 사이의 굳건한 사귐을 일컬어 '금란지계'로 나타내었고, 또한 선무성사(宣武盛事)에서 대홍정이란 사람은 친구를 얻을 때마다 장부에 기록하고 향을 피워 조상에 고했는데 이 장부 이름을 금란부(金蘭簿)라 했다는 고사가 나온다.

그 후 난초에는 '깊은 우정' '군자의 교제'라고 하는 꽃말이 생겨나서 난우(蘭友)·난형(蘭兄)·난객(蘭客)·난교(蘭交)·난계(蘭契)·난언(蘭言) 또는 금란지교(金蘭之交)·금란호(金蘭好)라고 부르게 되었다.

원대(元代) 초기에는 몽고족의 지배하에서 나라를 잃고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은둔 생활을 한 문인들 사이에 묵란도가 저항 수단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유명한 예로는 송의 유민화가 정사초(鄭思肖)는 난을 그려도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흙 없이 뿌리가 드러난 노근란(露根蘭)을 그려 몽고족에게 국토를 빼앗긴 설움을 표현하였다.

매죽헌 성삼문(成三問)도 '오설란(傲雪蘭)' 시에서 '공자는 거문고로 난의 곡조를 타고 굴원은 난초 수(繡) 놓인 띠를 차고 있는데 그윽한 난향기는 다른 열 가지 꽃향기에 비교 할수 없으니 이에 다시보고 사랑하리라'고 읊고 있다.

아름다운 봄 난초꽃 향기와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서 공자로부터 시작된 난초가 주는 의미를 되짚어보며 사군자적 삶의 전형을 만나고 싶다.

윤여환 충남대 예술대학 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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