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편집국에서] 이기(利己)적인 문명의 이기(利器)

  • 오피니언
  • 기자수첩

[김유진의 편집국에서] 이기(利己)적인 문명의 이기(利器)

  • 승인 2019-01-16 17:24
  • 신문게재 2019-01-17 22면
  • 김유진 기자김유진 기자
언제부턴가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계산대에 서지 않는다. 대신 무인계산기(키오스크)에 선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주문이 끝난다. '이렇게 편리한 시스템이라니!' 영화관부터 식당까지 키오스크의 등장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나름 능숙하게 주문하는 나 자신을 보면 현대인이 된 것 같았다. 좋은 점은 또 있다. 어떤 메뉴를 고를지 고민하는 동안 종업원과 어색한 대면을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키오스크는 한참을 망설여도, 이것저것 골랐다가 취소해도 묵묵히 기다려준다.

카페 주문 문화도 바뀌었다. 전엔 메뉴를 고르고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았다면 지금은 자리에서 휴대폰 하나로 다 해결한다. 앱에 있는 카드로 비용을 충전해 주문부터 계산까지 한 번에 끝낸다. 기차와 고속버스 예매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친구를 만나다가도, 집에서 쉬고 있다가도 얼마든지 표를 구할 수 있다. 창구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승차권을 건네받았던 기억은 잊은 지 오래다.

내게는 너무나도 편리하고 익숙한 것이어서 누군가에게는 난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부모님께서 내게 기차표 예매를 부탁하시기 전까지는. "그거 그냥 앱으로 하시면 돼요."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냥 하면' 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처음엔 몰랐다. 스마트폰이 친숙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앱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하기부터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패스트푸드점 무인계산기도 마찬가지다. 노인들이 화면을 몇 번 눌러보다 이윽고 계산대로 가서 주문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노인뿐 아니라 전자기기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발걸음을 돌리기 쉽다. '디지털 소외'를 겪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디지털 소외는 최근의 일이 아니었다. 은행권에서 창구 상담보다는 ATM 이용을 권유하는 모습을 제법 오래전부터 봐왔다. 비교적 간단한 현금 입출금도 누군가에게는 사람을 통해서 하는 것이 수월하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자주 가던 영화관도 창구를 하나 둘 줄이더니 언제부턴 한 곳만 열어놓았다. 마음 한편 안타까움이 든다. 영화관은 인터넷 또는 모바일 예매가 익숙한, 무인 예매가 편리한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겐 영화 한 편 보기도 벅찬 공간이 돼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누릴 수 없다면 다시 돌아봐야 한다. 키오스크들을 없앨 수는 없지만 좀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바꿀 수는 있다. 글자 크기는 더 키우고 불필요한 영어는 우리말로 바꾸자. 기계가 낯선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간결하고 명확한 안내 멘트를 넣는 것도 좋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이기(利己)주의로 변질하지 않길 바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尹파면] 대통령실 세종 완전이전 당위성 커졌다
  2. '수도권 과밀 해소' 다람쥐 쳇바퀴...세종시가 살아야 한다
  3. ‘함께 키우는 아이 함께 만드는 미래’
  4. 사랑의 사다리 밴드, 대덕구 소외계층 80가정에 밑반찬 봉사
  5. 숨죽이며 지켜봤던 22분 대전시민들 초조-기대-환호 그리고 눈물(22분 무편집)
  1. [현장르포] 그림으로 담아내는 민주주의의 순간들: 한의사이자 환경운동가 '김나희'
  2. [尹 파면] 윤석열 입장문 발표…"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
  3. 대전 현안 해결 '기회의 장' 열렸다
  4. 대전 밀알복지관과 국가철도공단 충청본부의 특별한 동행
  5. [尹 파면] 충남대 민교협 "정의로운 심판, 민주주의 승리 상징 이정표"

헤드라인 뉴스


윤석열 대통령 전격 파면… 헌재 8명 만장일치 `인용`
[이슈] 청소년 비행 잡고 불법촬영 막아주는 대전자치경찰위 `과학치안`
[이슈] 청소년 비행 잡고 불법촬영 막아주는 대전자치경찰위 '과학치안'

"이곳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담배 피우지 마세요" 인적이 드문 골목이나 공원에서 청소년들이 음주와 흡연을 하며 비행을 저지를 때 인공지능(AI)이 부모님을 대신해 "하지 말라"고 훈계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대전 대덕구 중리동의 쌍청근린공원 일대에는 어른 대신 청소년들의 일탈과 비행을 막는 스마트 AI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다. 영상카메라라는 '눈'을 통해 AI가 담배를 피우는 동작과 술병 형태, 음주하는 행위를 감지해 그만할 때까지 경고 음성을 내뱉는 것이다. 이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전자치경찰위원회가 과학기술업..

`결국 폐업`…1분기 충청권 건설업 폐업신고 17건
'결국 폐업'…1분기 충청권 건설업 폐업신고 17건

올해 1분기 폐업 신고를 한 종합건설업체가 160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0년 이후 같은 분기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충청권 건설업체 폐업 신고 건수는 17곳으로 집계됐다. 3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종합건설업체의 폐업 신고 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모두 160건으로 조사됐다. 이는 2024년 1분기(134건)보다 약 12% 늘어난 수준이다. 1분기 기준으로 비교하면, 2020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최근 5년간 1분기 폐업 신고 건수는 ▲2024년 134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윤석열 대통령 파면에 기뻐하는 시민들 윤석열 대통령 파면에 기뻐하는 시민들

  • ‘윤석열을 만장일치로 파면하라’ ‘윤석열을 만장일치로 파면하라’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