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 봉사원이 메릴린(가명)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앞으로 적십자 봉사원과 메릴린 가족이 희망풍차 결연을 맺고, 메릴린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며 매월 필요한 희망풍차 물품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 제공 |
다시금 대한적십자사 직원을 마주한 메릴린(44·가명)은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 10월부터 대한적십자사의 위기가정 긴급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000만 원을 지원받게 된 메릴린 씨다.
"2003년에 필리핀으로 여행 온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그 때도 남편은 몸이 좀 불편했는데, 이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해 한국으로 왔죠."
15년 전, 남편 하나만 보고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에 시집온 메릴린. 하지만 한국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남편은 당뇨와 간경화로 입·퇴원을 반복했고,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의 수발 역시 그녀의 몫이었다. 평일에는 영어강사로 일하고, 주말에는 시어머니와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책임졌다.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 직원과 메릴린이 함께 걸어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 제공 |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 하나만 보고 온 낯선 땅에서 메릴린은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조차 몰라 더욱 외롭고 쓸쓸했다.
슬픔을 추스를 틈도 없었다. 월세를 전전하던 메릴린 가족에게는 몸을 누일 방 한 칸도 절실했기에 남편의 사망보험금 4000만 원으로 원래 살던 집주인의 빚 2000만 원을 떠안는 조건으로 방 2개짜리 집으로 이사했다. 세 아이와 살아갈 날이 막막하기만 한데,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 혜택에서도 제외됐다.
세 아이를 돌보고 시어머니를 수발하느라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기도 힘들었다. 쌓여만 가는 대출이자와 생계위기 속에서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건 첫째 아들 준수(가명)의 자살시도였다. 학교에서 준수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연락을 받던 날, 메릴린의 가슴은 무너져내렸다. 아빠의 빈자리가 컸던 탓일까. 한국말이 서툰 엄마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적십자 직원과 메릴린. 적십자 봉사원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노트북을 구입하기 위해 전자제품 매장에 들어서고 있다. 노트북이 생긴다는 생각에 메릴린과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 제공 |
생계비를 지원받은 메릴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이 평소 갖고 싶다던 롱패딩을 사준 것이었다. 추운 겨울이 와도 따뜻한 옷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해 늘 마음이 아팠기에, 그 어느 것보다도 아이들에게 옷을 사주고 싶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했던 노트북도 선물 받았다. 세 아이 모두 학교에 다니지만, 집에 변변한 컴퓨터 한 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선물 받은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폈다.
"둘째 주희(가명)가 공부를 잘해요. 영어학원을 다니고 싶어 했는데 못 보내줘서 속상했어요. 요즘 영어 학원을 보내는데 레벨업 했다고 얼마나 자랑을 하는지 몰라요. 셋째 윤희(가명)는 아파서 걱정이 많아요. 주신 도움이 없었다면, 병원 치료도 못 받았을 텐데 덕분에 치료도 받고 병원비도 낼 수 있었어요. 우리 가족을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메릴린은 연신 적십자 직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한 때는 고국인 필리핀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나고 자란 한국을 쉽게 떠날 수는 없었다. 메릴린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한국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내포=유희성 기자 jdy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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