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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
돌아보니 길가 비탈에는 어느새 노을에 물들던 나뭇잎도 다 사라지고 이제 빈 나무들만 제 몸을 말리며 서서히 성자(聖者)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허공을 향해 길어 올리는 그들의 기도가 한결 깊어져 가고 있다. 나무들마다 제 각각 간직하고 있던 가장 무게 있고 권위 있는 분위기와 표정을 연출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새 모두 성자의 옷으로 바꿔 입고 서서히 언덕을 올라 산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그런 다음 내년 봄이면 그들은 다시 푸른 옷으로 '청포(靑袍)'를 갈아입고 우리를 찾아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문득 포구로 달려가 첫 배를 타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문득 지난 가을에 보았던 서해 포구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무창포 바닷길 생각이 아주 간절하게 다가왔다. 언젠가 그곳에서 썼던 시 한편도 함께 떠올랐다.
가을 무창포에 가서 가을 바닷길 드러난 것을 보고 왔다 // 바다는 한 달에도 몇 번씩 가슴 갈라내 제 속을 열어주었다 바다의 뿌리가 훤히 다 보였다 나도 바다에게 모든 걸 열어 보여주고 싶었다 // 가을은 그렇게 투명해져 제 속을 내보이려 분주했다 // 모든 것들 한껏 외로워져 바다는 뿌리 쪽으로 가닿아 있었다 한 달에 몇 번씩 무창포도 제가 걸어온 길을 지우고 있었다 - 졸시 「무창포 바닷길」 전문
바다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속에 수많은 길을 품고서 제 삶을 모색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길에서 헤매는 동안에도 파도는 제 속의 깊은 진실을 찾아 밤새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길을 찾기 위해 자주 서해로 달려가던 것보다 더 치열한 것이었다. 그렇게 계절마다 바뀌어가는 바다와 포구는 우리 삶의 모습을 가장 압축해서 보여주었다. 한 달에도 여러 날 무창포는 바다를 갈라 제 속을 보여주었다. 그 바다 속으로 여러 갈래의 길들이 실핏줄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바다는 그 길을 따라 환호성 올리며 달려드는 사람들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물이 차올라 길들이 다 사라지기 전까지 바다는 햇살 받으며 몸을 말리고 있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바다는 제 가슴 갈라내 속을 보여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길은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 길이라고 지정하는 순간 그 길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길은 없다, 라고 말하는 순간에 길은 다시 열리기 마련이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하지 않던가. 그렇다. 길 속에는 또 다른 길들이 들어 있다. 12월은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주는 때이다. 이제 우리도 새 길을 찾아가는 혜안을 열어야 할 것이다.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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