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규 <달> 전문
더욱 세차게 쳐라/윙윙 소리가 나도록/뾰족한 끝이 깊게 패이도록//어찌할거나/버려두면/주저앉고 마는 것을//뒤집히면 살 수 있나/엎어지면 살 수 있나//더 세차게 쳐라/겨울바람처럼/윙윙 소리가 나도록//그리하여/나를 스스로/있게 하라
최원규 <팽이頌(송)> 전문
나의 멍청한 얼굴과/혼탁한 목소리를 만드신/나의 가슴에 고뇌의 꽃과/ 그 꽃의 그늘을 만드신/당신은 지금/내 앞에 보이지 않으나//나의 둥근 머리통에 노란/황금을 녹여 가득 채워 주신/당신은 지금/내 앞에 보이지 않으나//가끔 나를 불 속과 물 속에/번갈아 담궈/말갛게 씻어 주시고//가끔 나에게/비단 옷을 걸쳐 주신/당신은 지금/내 앞에 보이지 않으나//대장간의 뒤뜨락/쓸모없는 쇠붙이가/죽음처럼 흐트러진 저녁나절/그 꼬딕의 쇠붙이를/하나씩 주워/나의 빈 호주머니에 넣어 준/당신은 지금/내 앞에 보이지 않으나//당신은 나에게/아주 가까이 가까이 계셔/나의 숨결이 닿은/꽃이나 이파리 곁에/잠깐 숨어 계신/당신이여
최원규 <어둠 속에서> 전문
이에 최원규 시인을 그의 자택 서구 가람아파트에서 만나 시와 함께 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 교수님, 저의 대학 시절 은사님을 32년 세월이 흐른 지금 이렇게 인터뷰 자리에서 뵙게 되어 너무나 감개무량하고 가슴이 벅찹니다. 기자가 된 보람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이번 시선집을 내시게 된 소감을 들려주시지요.
▲그동안 시집을 17권 냈는데 62년 문단 데뷔 이후 써온 시들 중 제 삶을 조명하는 성격의 시집을 냈다는 점에서 제 시들이 총망라된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집의 특징은 최원규가 시를 쓴 시인으로서의 전모를 연대별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에 시 100편을 모아 출판에 즈음하여 제 삶 전체의 집약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큰 의미를 둡니다. 60년대에서 80년대 인간 내부 사회화 심리와 인간 사회의 이상들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격변의 한국 현대사에서 인간들의 양상을 이 시집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자성,자기 관찰, 이것이 사회와 어떤 조화를 갖고 나가는지 생각합니다.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앞날에 대한 희망을 많이 말합니다. 어쩌면 최후의 시집이 될 수도 있는데 기쁘기도 하고 좋지만 인간의 생로병사가 있듯이 90이 가까워 오는 나이에 생의 종말을 고하기 전 제 시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기고 총정리하는 의미도 큽니다. 시집 제목도 순리대로 하자는 의미에서 <하늘을 섬기며>라고 했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부터 천성교회를 다니며 크리스천이 되었지요. 서양문학은 대부분 기독교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국문학학자로서 퇴임 후 2모작으로 서양 문학에 관심을 두고 독서를 하다 보니 기독교에 관심을 두게 되어 천성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불교에서의 인연과 기독교에서의 구원 사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는 1960년대 초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시를 써왔습니다. 어언 60년 동안 이어진 작업이지요.
그러나 기쁨과 황홀의 불꽃은 서서히 저녁 놀 속에 스미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모두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매번 감동을 자아내기에는 심히 미흡한 제 시를 드렸을 뿐인데,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지요.
이제부터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햇살 같은, 푸른 숲에서 흘러나오는 생수 같은 사랑을 제 시를 읽는 이 모두에게 드리고, 하늘을 섬기며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생각을 찾아내는 게 시입니다. 시라는 것은 결국 최원규 자신입니다. 최원규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내 자신의 인간적 성찰입니다. 시대적 상황, 자연적 현상, 시대와 사회와 자연과 인간의 중간점을 찾아가는 게 특징입니다. 저는 시를 쓴 이래 특별한 방법을 창안하여 詩作(시작)의 비결을 삼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언제나 시를 쓴다는 사실이 처음 시도하는 일처럼 생소하고 약간은 흥분마저 느껴지고 두려움까지 생깁니다. 저는 시를 쓰는 일이 이 지구 상에서 가장 귀중한 일이며, 어떤 재미나는 일보다 더욱 재미나고 신나는 일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그립니다. 그러나 막상 원고지를 펴놓고 시를 쓰려고 하면 그것이 재미있고 귀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싹 가시고, 이제까지 머릿속에 정리된 약간의 모든 생각 찌꺼기가 몽땅 백지처럼 증발해 버리고 맙니다. 그리하여 텅 비어 있는 껍데기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고 허둥댑니다. 그러면 안절부절 못합니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고 그 책상 서랍 속의 모든 물건이 제 자리에 있는지 살핍니다. 음악을 듣습니다. 교향곡을 듣다가 중도에서 끊어버리고 다시 경음악을 듣습니다. 물론 담배는 계속 줄담배를 피웁니다. 만약 누군가 저의 옆에서 이러한 저의 행동을 주시한다면 참으로 가관일 것입니다. 잠시도 하던 일을 계속하지 못하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불안정 신경질-이러한 과정이 지나가면 마치 여름날 소낙비가 한 차례 지난 후 찬란한 햇빛이 밝아오며 온 세상이 깨끗하고 맑아지는 것처럼, 나의 마음도 맑고 밝아지면서 시를 쓰는 첫 줄이 무지개처럼 떠오릅니다.
▲첫째는 음악이요, 둘째는 남의 작품에서 큰 감동을 받아 오는 일입니다. 그것이 근자에 더욱 역력히 그런 증후를 나타냅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역시 영향 관계가 중요한 모티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의 시는 저의 일기장의 메모에서 찾아냅니다. 그러니까 생활의 반성에서 얻어진 언어의 집합과 재구성에서 획득되어 집니다. 그리고 대상이 무엇이든지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의 싹이 나옵니다.
저는 저의 좁은 정원에 심어준 나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 시를 쓰게 됩니다. 시는 제 정신의 재입니다. 정신이 타고 있을 때는 불줄기로 하여 걷잡을 수 없지만 일단 불이 다 타고 남은 자리엔 재가 남습니다. 그 재들의 언어가 바로 저의 시가 됩니다.
-교수님의 시작 비법을 알려주신다면요.
▲저의 작업은 마치 거미의 그것처럼, 무엇이 걸릴까 열심히 나뭇가지에 거미줄을 치는 거미들을 연상하고, 생각의 거미줄은 저의 정원 나무 끝에 펼쳐져 밤이나 낮이나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다 해도 노을이나 바람이나 햇빛이 때론 새로운 빛깔과 내음으로 저를 흥분케 하고 나뭇잎에도 가끔 거미줄이 걸려 아름다운 빛을 던져주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저의 시작 비법입니다. 저는 이를 ‘인식의 거미줄’이라 부릅니다.
-교수님에게 시는 어떤 의미인지요.
▲詩는 삶입니다. 한마디로 저보고 시를 왜 쓰냐고 묻는다면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고지순한 순간의 아름다움과 평화스러움을 찾고자 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는 쓰는 게 아니고 믿는 것입니다. 생명을 연장 시키고 슬픔을 제거해주고 사랑을 일깨우며 나라를 바로 세우고 없는 것을 있게 해주고 무서움을 없애며 참된 것만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로를 믿도록 감동 시키는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지난해까지도 충남대 평생교육원에서 시 창작반을 열성적으로 운영하면서 각종 문예지에 꾸준히 시를 발표해왔습니다.
어떤 시가 대표작이라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남들이 좋아해주는 시가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달>,<팽이頌(송)>,<어둠 속에서> 와 같은 시를 남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더군요.
-교수님의 인생을 회고해 보신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저는 평생 교직에 몸담고 시만을 생각했습니다. 그 밖의 것은 아무 것도 모르고 알려 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마치 멍에를 쓴 소가 풀밭을 갈듯 벗어나려 하지도 않고 벗을 수도 없는 행복한 숙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일제 강점기에 유년을 보내고 사춘기에 해방의 환희와 골육상쟁의 격변기를 보냈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잔혹한 지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 아픔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체험 후에 장년기에 들어 시가 주는 황홀한 힘을 접하면서 놀랍게도 마음 깊숙이 보석을 간직한 것 같이 든든하고 평화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시 이외의 것들은 바라지 않았고 가지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제 삶 속에 절망의 늪에서 시가 가져다 준 고뇌의 언덕이 얼마나 힘을 얻을 수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고독한 문학청년의 꿈과 화려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들풀로 자라 만개한 꽃의 언덕으로 우뚝 설 수 있으리라는 자부심을 교감합니다.
-시인이자 학자, 수필가, 교수, 비평가, 연구자 등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갖고 계신데요. 소회가 어떠신지요.
▲젊은 날부터 이제까지 시 쓰기는 제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였고 저는 시에 몰두하며 지내왔습니다. 제게 있어서 시는 곧 어머니요, 어머니는 곧 제 시가 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의 시 쓰기는 제 삶의 반성이나 고해성사 같은, 재해로부터의 방어나 질병으로부터의 예방과 같은 신앙적 신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부르는 다양한 호칭 가운데 가장 호명 받고 싶은 이름은 바로 '시인'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시에 대한 애정과 자의식이 각별합니다. 저는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문단 활동도 활발히 전개해 왔는데요. 한국시인협회 중앙위원, 세계시인대회 한국대표, 대전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시단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제 시 속에 유년시절의 순수함과 청년시절의 열정, 중장년 시절의 원숙미와 시와 삶에 대한 자의식 등을 담아왔는데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며 살 것입니다.
-교수님의 보람과 인생관,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실까요?
▲저는 일생을 교사로서 살면서 보문고에서 6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평생 학생들에게 시 창작을 가르친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86년 생애를 돌이켜보면 무상합니다. 욕심을 내지 않고 분수를 알고 만족함을 알라는 의미의 '지분(知分)지족(知足)'은 선친께서 주신 말씀인데 저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6.25때 공주 시장을 지내신 최병선 아버님은 저에게 늘 분수를 지키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뭐든지 욕심을 내지 말라고 하셨고, 남하고 경쟁하지 말라고 하셨죠. 이사도 많이 다니지 말고 한군데를 지키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회가 인간성 상실의 경쟁시대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데 아버님의 말씀은 따뜻한 인간의 도리를 전해주십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같이 여행을 모시고 다니지 못하고 소홀히 지내온 게 가장 후회스럽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더 가까이 하는 게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여생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욕심 없이 살고 싶습니다.
-중도일보에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중도일보는 우리 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신문사로서 충청 언론의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도일보 독자분들은 뜨거운 애정과 관심을 갖고 신문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더욱 가깝게 해야 되는 것처럼 충청 언론의 상징인 중도일보와 우리 독자들이 더욱 가깝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사회단체부 부국장 hansung007@
-최원규 시인은 누구?
▲1933년 공주 출생. 공주고,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충남대 대학원 문학박사. 충남대 인문대학장 역임. 국립 대만사범대학 교환교수 역임.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1962년 자유문학 신인상 당선. 육십년대 사화집 동인. 시집 <우물 곁에서>, 시선집 <바다와 새> 등 18권. 저서 <한국현대사론>,<한국현대시의 형상과 비평>,<우리시대 문학의 공간적 위상> 등. 수필집 <꺼지지 않는 불꽃>,<시는 삶이다> 등.
현대문학상,한국펜문학상, 현대시인상, 시예술상, 정훈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진을주문학상 등 수상.
한국언어문학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 한국 PEN 클럽, 한국시인협회, 대전시인협회 고문, 국민훈장 모란장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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