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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이미지 뱅크 |
아침저녁으론 제법 기온도 차가워져서 이불을 덮어야 한다. 잠, 즉 수면(睡眠)엔 대부분 공통점이 있는데 적당히 선선함을 느끼며 이불과 동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잠도 잘 오고 충분한 휴식까지 이뤄지는 때문이다.
한가위, 즉 추석이 되면 가장 반가운 건 역시나 가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이다. 올 추석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며느리'라는 새 식구가 증가한 때문이다.
올봄에 결혼하여 우리 가족이 된 며느리는 미모가 출중할 뿐 아니라 예의까지 밝아서 아내 또한 "만점짜리 울아가!"라며 반기는 터다. 지난 한여름에 아들과 외국으로 피서를 다녀온 며느리는 아내에게 멋진 가방을 선물했다.
그걸 손목에 걸고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자랑했다는 아내에게서 새삼 시어머니의 며느리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 흐뭇했다. 어젯밤 아들과 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는 아내가 잠시 전 낭보를 전했다.
"올 추석엔 우리 아들이랑 딸 내외가 모두 우리 집에 온대!" "잘 됐네! 나도 그날은 원래 근무인데 미리 대근(代勤)으로 바꿔놨거든." 나처럼 경비원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은 명절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사람구실을 하기 힘들다.
예컨대 지인이 자녀를 결혼시키는 경우, 그날은 십중팔구 주말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말은 커녕 공휴일에도 근무를 밥 먹듯 하는 내 입장에 있어선 참석이 불가능하다.
물론 축의금을 은행계좌로 보낸다고는 하지만 어찌 직접 만나서 축하를 전하고, 또한 어울려 술을 나누는 즐거움과 비하겠는가! 아무튼 아들과 딸 부부까지 추석에 집에 온다면 모두 네 명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걱정을 입에 달았다. "그럼 이 좁은 방에서 어찌 다 잘 수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조그만 평수의 빌라다. 방이 세 개이긴 하지만 하나는 내 공부방이라서 좁기도 하거니와 책 따위로 가득 차 있어서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못 된다.
아내는 안방, 나는 건넌방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내 방엔 또 김치냉장고 등이 가득해서 혼자만 겨우 잘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아이들이 미혼일 적에 딸은 아내와 안방의 침대에서, 아들은 거실에서 자곤 했다.
그러나 이젠 결혼까지 한 마당에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아내의 이유 있는 걱정에 나는 즉답의 아이디어를 냈다. "딸 내외는 안방에서 자라고 하고, 아들부부에겐 모텔에서 자라고 하면 되잖아?"
"그러면 되겠네!" 마침맞게 집에서 지근거리엔 대전복합터미널이 있다. 근방엔 호텔과 모텔들도 수두룩하기에 그런 생각을 꺼낸 것이었다. 더욱이 아들내외는 아직도 '신혼' 아니던가! 그렇긴 하더라도 언제가 되어야만 우리도 방이 넉넉한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까…….
여하간 가족이 있기에 행복도 존재하는 것이다. 가족이 없었다면 추석 또한 어찌 의미가 있으랴. 이런 관점에서 작금 당면하고 있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의 암울한 현실을 일갈(一喝)코자 한다.
작년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끔찍한 경고를 남겼다. "한국은 집단적 자살사회(collective suicide society)와도 같다."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 IMF는 사실 안 좋은 기억으로 우뚝한 게 사실이다. 이는 지난 1997년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이 실재하는 때문이다.
이러한 소위 'IMF사태'는 기업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실업자를 양산하는 따위의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되고 자살자가 속출했으며 한순간에 전 재산을 잃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아무튼 라가르드 IMF 총재는 왜 한국을 일컬어 '집단적 자살사회'라고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했을까? IMF 총재가 지난해 방한 당시 이화여대에서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여학생들은 한국에선 여성이 결혼·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도 단절되는, 이른바 '경단녀'로 추락할 수밖에 없음을 토로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간담회 후 "이런 문제(출산 기피현상)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며 그처럼 극단적인 표현까지 남겼던 것이었다. 한데 그의 예언(?)처럼 한국은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올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이 세계 최초로 1.0명 이하로 떨어졌으며, 올해 2분기는 이미 0.97명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이는 일부 도시국가나 전쟁 중인 나라를 제외하고,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비극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 왜 이처럼 심각한 사태가 발생한 것일까. 먼저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아무리 유능한 여성일지라도 정작 결혼 후 자녀를 낳게 되면 '엄청난 저항'의 현실과 만나게 된다. 그건 바로 효율적 양육이 어렵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부모님(친정)이나 시어머니 등이 도와주지 않는 이상엔 직장부터 그만두어야 한다. 자고 나면 억대씩 오른다는 아파트(일부라곤 해도 아무튼)는 '지금은 고생하지만 허리띠 졸라매고 열심히 일하면 우리에게도 내 집 마련의 희망은 있다!'라는 맹목적 믿음마저 붕괴시키는 단초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경제적 '허들' 외에도, 북유럽 선진국처럼 학교에서 내 어린 자녀의 수업이 끝나는 오후 2~3시에 엄마가 그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아도 학교에서 책임지고 맡아주는 사회적 합의조차 성립돼 있지 못하다.
이러한 안(案)을 복지부가 교육부에 얘기해봤자 교육부는 "선생님들이 반발한다"며 아예 입조차 뻥긋하지 못하게 막는다. 정부 자체부터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지금 우리나라는 '인구재난'이라는 절벽에까지 포위된 것이다.
다른 나라는 모르겠으되 우리나라엔 여성가족부가 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성가족부의 설립목적 및 주요업무'를 살펴봤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항목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어젠다(agenda)가 있었지만 여성(女性)과 연관된 것만 추렸다.
설립목적과 주요업무 :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및 여성의 권익증진 / 여성·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피해 예방 및 보호 / 여성정책의 기획·종합 및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 여성인력의 개발·활용 / 양육·부양 등 가족기능의 지원……
며칠 전 근무 중에 자녀 넷을 데리고 어디론가 분주하게 가고 있는 부부를 봤다. 순간 가족은 1+1= 2가 아니라, 1+1= 6이란 계산과 아울러, 저 부부가 사실은 진정한 애국자라는 생각에 차라리 존경스러웠다.
아무리 명문대 아니라 그 이상의 '할아버지'라도 결혼 뒤 출산에 이르면 직장에서부터 눈치를 주는 사회분위기 상 사표를 낼 수밖에 없는 나라가 바로 라가르드 IMF 총재의 경고처럼 '한국은 집단적 자살사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예(例)는 굳이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과 대학원까지 졸업한 자타공인의 재원인 딸이 그 케이스다. 내년 1월 출산예정인 임산부 딸은 다음 달에 현재의 직장에 사표를 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 또한 한국에서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려면 미혼이거나, 결혼하여 출산 뒤 애를 봐줄 사람이 지근거리에 있지 않은 이상엔 어림도 없는 신기루라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는 대목이다.
참고로,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제용어이다.
6.25 한국전쟁 중에도 한 해 50만 명의 아기가 출생했다는데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기는 '고작' 35만명대로 추락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아이를 낳고는 싶지만 집값(상상을 초월하는 가격)과,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걱정이 절망감으로 다가오고,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그야말로 전쟁터"라는 여성들의 아우성을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이럴 거면 차라리 여성가족부를 없애라는 성토까지 나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2019년 조세지출계획서에 따르면 내년 근로장려금 지급액은 올해(1조3473억 원)보다 3조5544억 원 늘어난 4조9017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증가한 3조5544억 원을 여성들이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환경에 투자하는 건 어떨까?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를 여성가족부가 관련부서와 대통령에게까지 건의하여 관철시킨다면 여성가족부 폐지 여론은 자연히 수그러들 것이다.
강조하건대 만약에 지금처럼 이렇게 자녀를 안 낳는다면 과연 추석마저 의미가 있을까? 추석과 설날 등의 명절에도 가족이 모이지 않으며 아이들 웃는 소리까지 증발한다면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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