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시 한편에 담긴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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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시 한편에 담긴 가을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 승인 2018-09-04 08:02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김완하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우리의 지난여름은 정말로 강퍅했다.

연일 이어지던 폭염과 새벽까지 쫓아오던 열대야. 그야말로 잠시도 에어컨의 바람 없이 지탱할 수 없는 날들이 우리를 아주 혹독한 시련으로 내몰았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는 여름의 시련이라는 또 하나의 벽을 두고 삶의 질을 가늠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요 며칠 사이는 서늘한 기온이 감돌고 있다.

처서가 지난 지 어느새 열흘을 넘어섰다. 눈을 들어 주변의 자연을 돌아보니 그 여름의 시련이 키워냄직한 변화들이 뚜렷하다. 그래서 시 한편에는 여름의 고통이 영글어낸 가을의 증상들이 담겨 있다.



해바라기의 둥근 꽃판이 / 태양을 따라 돌다가 / 한 정점을 향해 멈추어 선다 / 석류 열매는 둥글게 창을 열고 / 대추의 퉁방울 한결 단단해졌다 / 미처 부르지 못한 매미의 노래가 / 계곡 속을 떠돌다 / 상수리나무 둥치 깊게 파인 / 상처에 가 스밀 때, / 불볕더위 할퀴고 간 풀잎마다 / 흙의 숨결은 더 깊이 닿는다 / 벽을 기어오르던 담쟁이덩굴이 / 허공을 한껏 거머쥐고 / 시냇물 흘러 강으로 스며든다 / 바닷물은 수평선 쪽으로 가 / 하늘에 닿아 있다 <처서 지나 전문>

해바라기의 둥근 얼굴에는 까아만 씨앗의 점자가 지난 시간을 빼곡하게 기록해놓았다. 석류는 방금 제 가슴의 열정을 터뜨려 속을 보여줄 준비를 마쳤다. 대추알은 한껏 몸집을 부풀려 가을빛을 끌어당기고 있다. 밤을 새워 울던 매미의 쇳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담쟁이덩굴의 외벽 타기는 위대했다. 그 벽의 끝에는 허공이 있다. 비로소 그것을 움켜쥐면서 레이스를 마친다. 그의 목에는 금메달이 걸릴 것이다. 작은 물길은 모두 흘러서 강으로, 강으로 가고 종국에는 바다에 닿았을 것이다. 강을 비워서 이룩하는 바다. 그렇다. 바다는 그러한 물의 흐름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우리의 여름 또한 그러한 것이니. 그래, 지난여름은 이제 깡그리 잊어도 좋다. 강이 스스로를 비워서 바다로 변신하듯이. 이제 여름은 가을로 몸을 바꾸었을 뿐, 어디에도 여름은 없는 것이니. 그런 뒤에 나는 서둘러 가을을 맞이한다. 그리고 또 한해의 결실을 미리 점검해보려 한다. 그래도 여름이 우리를 간사하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한동안 여름이 우리를 좌지우지 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내가 여름을 보내주려 한다. 그리고 한편의 시를 읽어본다.

길을 가다 논바닥에 고인 가을 / 물의 여유와 긴장을 보았다 / 그곳에 내 얼굴을 비추어보면 / 그래, 나는 또 한 해를 / 너무 부끄럽게 살아왔구나 / 물의 가슴에 내 가슴을 묻고 / 도랑을 따라서 흘러가면 / 주변의 나무와 먼 산들이 / 알몸으로 누워 안기고 / 하늘의 구름이 한참씩 / 머물다 간다 // 비로소 구름도 뒷모습이 보인다 <뒷모습 전문>

시련 없이 오는 가을은 있지 않으니, 지난여름을 잘 견디어 냈다고 나는 주변의 단풍나무에게 악수를 건넨다. 풀잎들에게도 손을 내민다.

작은 자주달개비에게는 다가가 여름날에 초롱초롱 불을 밝히던 순간을 격려하며 상처 난 줄기에 호 하고 입김을 불어준다. 그러면 우리의 정원은 한결 더 깊어져서 서로의 어깨에 그늘을 드리우며 한바탕 환한 미소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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