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칼럼]오늘 날씨도… ‘답 없는’ 폭염특보

  • 오피니언
  • 최충식 칼럼

[최충식 칼럼]오늘 날씨도… ‘답 없는’ 폭염특보

  • 승인 2018-07-25 11:37
  • 수정 2018-07-26 07:59
  • 신문게재 2018-07-26 21면
  • 최충식 기자최충식 기자
그림
몽골에서 13년간 선교하다가 귀국한 종교계 인사가 말하길, 외국어가 생각을 단순화시킨다고 했다. 시퍼렇다, 푸르뎅뎅하다, 푸르스름하다, 검푸르다 등을 '블루'(몽골어는 '쳉헤르')로만 말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외국어가 원어민처럼 유창해도 파랑을 마린 블루, 네이비 블루, 색시 블루, 인디고, 스모크 블루 등으로 구분하기는 어차피 어려운 일이다.

일기예보를 봐도 단순한 '레드' 일색이다. 시·군 지자체별 지도 전체가 시뻘겋다. 자동기상관측으로 40도를 넘으면서 며칠 무식이 담대하게 더웠으니까 내일은 좀 색깔이 옅어지겠지 하는 평균의 함정을 사정없이 비웃는다. 가장 확률이 뛰어난 일기예보는 '오늘과 똑같은 날씨'라는 통계적 결론이 실감난다. 시원한 것, 시원한 곳만 찾도록 단순화시킨다.

에어컨도 이치상 단순함의 산물이다. (온수로 난방을 하듯) 찬물 돌려 냉방을 한다는 단순사고 덕에 탄생했다. 1902년 미국인 윌리스 '캐리어'가 인쇄소 제습용으로 만든 에어컨이 이제 냉방 필수품이 됐다. 지자체가 늘리기에 바쁜 무더위 쉼터란 곳도 에어컨 설치가 기본이다. 하필 이런 때 옥탑방에 들어가 사서 고생인 박원순 서울시장도 고역일 것이다. 에어컨 없는 체험적 동고동락보다 시민 각자가 누리는 냉방 복지가 보다 더 공공행정의 목표답다. 강남·북 균형발전도 폭염 스트레스가 제거되면 더 잘 풀릴 것이다.

근거 없는 예찬론이 아니라 이건 현실이다. 공무원 집무실에 에어컨부터 달았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시원한 에어컨 아래의 근면을 싱가포르 성공 요인으로 꼽았던 일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요즈음이다. 열대지역 문명의 성격을 바꾼 최고 발명품으로 극찬한 그가 금욕주의자로 알아 모신 이가 박정희였다.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 에어컨을 끄고 '난닝구'(러닝셔츠) 바람에 연신 부채질을 해댄 일화로 유명하다.



부채 들고 궁상떨던 그 시절의 더위는 그래도 견딜 만했다. 삼면이 바다여서 공기 중 습도가 열을 가두고 국토 70%인 산지가 공기를 정체시켜 고온다습이 되는 환경이야 똑같았지만 이렇게 동남아 아열대, 아프리카 열대와 일대일로 맞짱 뜰 상황에는 한참 못 미쳤다. 시작이 막연하지만 전 지구의 대기대순환 체계를 망가뜨리는 기후 변화나 자연 변동에 진지하게 맞설 방도를 꼭 찾아내야 할 것 같다. 적도가 관통하는 아프리카 콩고, 가나, 소말리아보다 '대프리카' 대구가 덥다. 대전도 대프리카가 될 판이다. 서울은 서프리카, 광주는 광프리카가 다 됐다.

의학적인 병명도 아닌 냉방병에서 안전하며 온실가스, 오존 발생을 최소화한 고효율 에어컨 개발 문제, 전력 수급의 문제도 있지만 에어컨은 경시하면 안 될 대안 중 하나다. 여기에 비하면 12호 태풍 종다리 기다리기는 무력한 답이다. 15년 전 유럽에서 폭염으로 3만5000명이 사망한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사회경제적 수준과 연령과 성별 등 개인 민감도가 다른 대(對)폭염 정책을 촘촘하게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재난관리법에 '폭염'이 규정되지 않았다고 자연재난이 아닌 것은 아니다.

만물을 구워버릴 기세 앞에, 온열환자의 연이은 사망 앞에서 전기를 아끼고 더위를 참자는 '생각의 관성'은 단순하도록 작아졌다. 그 쓸모없음의 쓸모조차 사라지려 한다. 폭염 지옥 속에서 냉방 바람을 누리는 소소한 복락을 사람들은 "천국"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불러다 준다면, 에어컨 복지도 복지다. 이 시간 이후부터 나는 이것을 보편적 냉방 복지국가로 명명하려고 한다.
944076834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통령실 이전 '대전과 세종 경계선' 발언은 왜
  2. 휴대전화 뺏었다고 교사 폭행... 무너진 교권, 대책은 없나
  3. 대전시불교총연합회 주최 대전시민연등문화축제
  4. "대전교육청이 나서야" 급식 조리원 문제 해결 촉구 목소리 잇달아
  5. "교도소인데요 계약서 보낼게요" 교정기관 사칭 사기 '극성'
  1. [박현경골프아카데미]치킨윙이 계속 나온다고요? 클럽 끝 방향만 바꿔주면 해결됩니다!
  2. 원자력산업 종사자들 민주당에 "긴 호흡으로 지원·육성 필요"
  3. 대한민국 대표 과학축제 '2025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 하루 앞으로
  4. 건강관리협 대전충남지부, 대전 돈보스코의 집 사회공헌 건강검진
  5. [사설] '과학축제' 개막, 대전 위상 알릴 호재

헤드라인 뉴스


"충청서 이겨야 대선필승" 민주-국힘 중원대첩 사활

"충청서 이겨야 대선필승" 민주-국힘 중원대첩 사활

6·3 조기대선이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최대 승부처 충청 민심을 잡기 위한 각 당 후보들의 행보가 본격화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종 후보 선출을 위한 충청권 투표에 돌입한 가운데 각 후보 진영은 금강벨트의 각 요충지 공략에 나섰다. 1차 예비경선에 진출할 후보를 확정한 국민의힘의 경우 지역 보수 인사별로 지지후보별 세 결집에 나서는 등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양 당 후보들이 이처럼 충청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반드시 중원을 차지해 한다는 절박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16일..

정치권, 세월호 참사 11주기 추모… 대선 후보들 행보는 대조
정치권, 세월호 참사 11주기 추모… 대선 후보들 행보는 대조

세월호 참사 11주기인 16일, 정치권은 모두 희생자를 추모하고 영면을 기원하며 안전한 대한민국을 강조했다. 대권행보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김경수·김동연·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한동훈,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도 추모행사에 참석하거나 개별적으로 추모했지만, 국힘 주자 대부분은 경선에 집중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민주당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과 국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조국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 개혁신당 천하람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에 참석했다. 민주당 대변인은..

[우리동네 자영업 스토리] 대전 헤비츠 갤러리 카페
[우리동네 자영업 스토리] 대전 헤비츠 갤러리 카페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한 번쯤은 본 듯한 카페와 식당 등이 눈에 익는다. 언젠가 한 번 가보겠다는 생각에 스치면 다른 업종으로 바뀌기도 한다. 새 업종이 들어오면 궁금하던 찰나에 영업을 종료한다. 손쉽게 바뀌는 자영업의 생태계 속에 이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은 어떤 스토리로 가게가 만들어졌는지, 가게만의 장점은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발길이 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방문 전 그곳만의 스토리와 강점 등을 자세히 안다면 가게를 방문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진다. 자연스레 발길이 닿고, 자영업자는 매출이 오르고, 지역에서 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느려도 괜찮아’, 어린이 거북이 마라톤대회 ‘느려도 괜찮아’, 어린이 거북이 마라톤대회

  • 감염병 예방 위한 집중 방역 감염병 예방 위한 집중 방역

  • 새내기 유권자들, ‘꼭 투표하세요’ 새내기 유권자들, ‘꼭 투표하세요’

  • 씨 없는 포도 ‘델라웨어’ 전국 첫 출하 씨 없는 포도 ‘델라웨어’ 전국 첫 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