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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우 대전미술협회장·배재대 교수 |
저 멀리서 날고 있는 하얀 새는 작은 점처럼 보이지만 나름 존재감을 들어내듯 여유롭게 날갯짓을 한다.
아직도 아침 녘이면 찬 공기로 인해 따뜻한 온기가 그립다.
바람 없는 평온한 날씨라서 그런지 해가 올라오니 금세 등짝을 따뜻하게 덥힌다.
방향을 바꿔 앞가슴을 내밀면 넘실대는 불꽃 너머로 그 겨울의 왕국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세월은 나이를 먹으면서 가속도가 붙는다더니 20년 공간을 빗살처럼 빠르게 지나버렸다.
20년 전 동토의 땅 시베리아라는 곳이 쉽게 가기가 어려운 곳이었는데, 이루크추크 예술대학의 교환교수로 1년을 거주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그때는 동토에 떨어트려 진 외톨이 신세로 외로움과 수줍음으로 인해 그리 활발하게 살지를 못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외로움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그림 제작에 몰두할 수 있게 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변했으니, 러시아는 나에게 기회의 땅이었고 새롭게 거듭나는 변화의 시간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느껴질 못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오가는 과정이나 시간이 훨씬 가까워진 러시아의 시베리아 이루쿠츠크와 바이칼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 공항에 새벽에 도착해 버스로 이동한 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이루쿠츠크에 내리면서 눈에 들어온 광경은 기대했던 닥터지바고 영화의 장면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이칼을 만나고 부터는 내 인생에서 예술에 대한 시각과 정신적인 부분에 일대 전환기를 가져왔다.
자연이란 것이 이런 대국의 자연을 경험하면서 느끼게 되는 대자연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나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시작한 사고가 자의식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던 내면의 세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리는 바이칼 호수는 맨눈으로 물속 40m를 바라보면 동전의 앞뒷면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그 수정 같던 물은 환경오염에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의 걱정처럼 지금도 맑음을 유지하고 있을까?
꽃을 가슴에 않고 있는 모습과, 200~300년에 걸친 세월의 덮개를 이고 있는 목조 주택 그 자체와 문짝 하나하나는 그대로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바이칼은 그렇게 많은 배가 바다 같은 호수를 쉼 없이 다니는데도 기름 한 방울 떨어진 곳이 없이 깨끗하게 보호되던 곳이었다. 작은 바위섬에서는 바이칼 물범 가족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물 밖에서는 관객 숫자와 얼 비슷한 정도의 연주자들이 공연을 하는 곳. 그리고 자욱한 자작나무 연기 속에서 익어가던 훈제물고기 오믈의 향이 지금도 코앞에서 어른거린다.
작은 것도 소중해 하고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들 소박한 행복의 의미를 알고 사는 그들의 모습이 선하다.
바이칼 주변의 가을 자작나무 단풍 숲은 어떤 영화나 예술 장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었다.
그리고 9월 말경이면 겨울이 시작되나 본격적인 추위는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는 1~2월이다.
겨울의 호수에서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일 미터가 넘는 두께의 얼음은 액체가 고체로 변할 때 부피가 팽창하면서 생기는 우연의 아름다움은 웅장하고 그리도 섬세함이 넘치니 그 어느 조각가도 상상할 수 없는 특별한 작품들을 창조해 낸다.
여행을 통해서 느끼는 새로움의 충격들과 그리움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에 녹아 들어가 자양분이 되어 새로운 생명으로 화답한다.?
그래서 바이칼의 리스트비앙카를 나는 낙원이라 감히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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