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대학교 민병찬 교수 대전시 4차산업혁명추진위원회 위원 |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구소련과 동구공산권의 개혁개방은 공산권의 몰락과 냉전체제의 붕괴라는 20세기의 대변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변혁의 와중에 독일과 예멘이 통일됐다. 이에 따라 한반도 통일도 어느 정도 현실의 실체적인 문제로서 우리 앞에 다가서게 되었다. 더욱이 북한의 경제난 심화와 국제적 고립, 특히 김일성,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 권력의 불안정 등 내부여건의 변화는 예기치 않은 순간에 통일이 닥쳐올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다. 통일이 이처럼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만큼, 우리는 왜, 어떻게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분단으로 인해 우리 민족은 한국전쟁이라는 골육상쟁의 참화 이외에도 자유와 인권의 제약, 민족자존의 손상, 민족사의 굴절 등 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어 왔다. 특히 북녘땅에 두고 온 혈육과 친지, 고향산천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이산가족들은 한 맺힌 삶을 살아왔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민족구성원 모두가 "함께 이루는 통일"이며, "더불어 잘사는 통일"이다. 다시 말해 통일은 7천5백만 민족구성원 모두가 주인이 되고, 개개인의 자유와 복지, 그리고 인간 존엄성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성립시킴으로써 참된 해방을 완성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오랜 적대관계와 상이한 이념체제로 인해 남북한 간에는 상호 불신과 이질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갑자기 "더불어 잘사는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연히 정치적 통합만을 이루게 된다면 남북의 주민들 간에 갈등과 반목이 증폭될 수 있다. 예멘의 경우 단기간에 정치적 통일은 이루었으나, 주민 간 갈등이 더 큰 적대감으로 발전하여 결국 다시금 내전을 겪었던 것이다. 따라서 통일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이루는 것이 현실적이며 합리적이다.
현재 남북한이 상호 불신과 적대감을 딛고 통일에 접근하기에는 많은 심리적 및 이데올로기적·제도적 장애요인들이 있다. 이러한 장애요인들은 민족의 번영과 민족구성원 개개인의 자유와 복지 및 인간 존엄성의 구현이라는 통일의 목표에 근거하여 하나씩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이 서로 제도적 장애를 줄여나가면서 양쪽의 주민들이 서로 왕래하고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북한의 주민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서로에게 적응하며, 나아가 서로를 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남북한은 점차 갈라졌던 민족을 하나로 묶고,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는 생활공동체를 발전시켜 "함께 잘 살 수 있는 통일한국"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로 가는 이 모든 과정은 남북한 간의 정치, 군사적 화해와 신뢰구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남북한 간의 화해와 신뢰구축 없이는 남북을 오가는 사람들의 신변보장이나, 남북한 간 물적 교류의 안정성도 기약할 수 없다. 정치, 군사적 화해 없이는 남북한 간에 교류협력 자체가 가능하지 않으며, 따라서 서로 이해를 증진한다거나 서로 협력하고 도울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남북한 간의 정치, 군사적 화해와 신뢰구축은 "다 함께 잘사는 통일"을 위한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전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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