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꽃씨를 묻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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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꽃씨를 묻는 마음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 승인 2018-03-20 10:00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김완하
김완하(시인·한남대 국문창작과 교수)
올봄에 나는 다시 베란다 한 구석에 작은 꽃밭을 만들고 몇 가지 꽃씨를 심기로 결심했다. 내가 그동안 꽃씨를 심어본지도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대학원에 다니던 30대 초반 변두리에서 사글세에 자취를 한 적이 있었다. 봄비가 내린 어느날 집 근처를 산책하다 나팔꽃 모종을 발견하였다. 언덕을 넘어 들길로 접어드는 비탈에 한 무더기 나팔꽃 모종은 한 뼘씩 자란 상태였다. 나는 그 가운데 촘촘하게 돋아나 있는 모종을 몇 포기 파내서 사글세 집 창가에 옮겨 심었다. 그리고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그 나팔꽃은 줄기차게 자라 서쪽으로 난 창틀을 온통 뒤덮고 그늘을 드리워 제법 서늘한 풍경을 연출하였다. 어느 여름날부터 꽃이 피어 아침 나팔소리로 상쾌한 시간을 열어주었다. 오후가 되면 줄기와 이파리가 창으로 들이치는 햇빛을 자연스레 막아주었다.

그해 가을 나는 몇 포기 나팔꽃에서 제법 많은 씨앗을 수확했다. 그리고 그 씨앗을 30개씩 봉투에 담아 30명의 주변 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부탁을 하였다. 그 나팔꽃을 심어 잘 가꾸고 잎과 꽃을 감상한 뒤에 가을이면 씨앗을 수확하여 주변 사람 30명에게 30개씩의 씨앗을 나누어 주며 그들도 그렇게 하도록 당부하라고 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팔꽃이 우리나라를 온통 뒤덮고 끝내 북한까지도 물들여 우리 한반도가 나팔꽃으로 통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다. 그 나팔꽃 씨앗에는 나의 희망이 가득히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후 언제부터 나조차 그 나팔꽃의 존재에 대해 잊어버렸다. 아마 결혼을 하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나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팔꽃은 올해에도 어느 곳에선가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어린 날 어머니는 봄만 되면 내 손을 잡고 고향집 우물가 꽃밭에 꽃씨를 묻곤 하셨다. 아침저녁으로 우물을 길어 물을 주고 봄비가 흠뻑 내린 날은 싹이 돋았다. 그리고 떡잎을 피우고 자라 줄기와 잎을 뻗으며 허공을 감아 오르고 어느날 무성한 줄기 사이로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여름날 어머니는 그 꽃밭의 봉숭아 꽃잎을 따서 곱게 빻아 내 손톱에 물을 들여 주셨다. 한밤을 자고 나서 손톱에 든 물을 보고 지르던 탄성. 손톱에 든 봉숭아물이 첫눈이 오는 날까지 남아 있으면 나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기에 긴 손톱도 깎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몇 년 전 어머니께서는 나팔꽃 줄기를 타고 하늘나라로 오르셨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내 마음 밭에 심어놓고 가신 꽃씨들은 봄만 되면 싹을 틔우고 잎과 줄기를 키워 함빡 웃음을 피워내곤 한다. 나는 지금도 그때 어머니가 나와 함께 꽃씨를 묻던 그 순간을 떠올리곤 한다. 그때 어머니는 꽃씨를 묻는 의미와 방법이나 생명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다. 그냥 묵묵히 꽃씨를 땅에 심고 가꾸시며 한 계절 한 계절을 기도하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어떠한 마음으로 꽃씨는 심으신 것인지. 그래서 꽃씨는 어떠한 마음으로 심는 것인지를.

그렇다. 그것은 진정으로 흙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행위였다. 그것은 노동의 정신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흙을 사랑하고 생명을 신뢰하는 마음. 씨앗의 생명력을 믿었기에 그것은 반드시 싹틀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는 노동이었다. 그 마음은 진정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흙을 신뢰하는 경건한 의식이었다. 그 의미는 바로 오늘 나에게 전이되어 내가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지속적으로 내 생을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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