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대전버드내아파트와 도마동을 잇는 유등교(柳等橋)의 피해는 교통흐름에 지장을 줄 정도로 다리 교각이 침하되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앞선다.
집중 폭우가 끝나니 찾아오는 것은 불볕더위로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 같다. 인간의 자연에대한 무분별한 도전에 대한 응징을 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청포도가 익어가고 옥수수와 감자가 우리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7월의 두 번째 토요일은 고등학교 농업과 동기생들이 부부동반으로 모임을 갖기로 한 날이다.
농촌 부흥의 부푼 희망을 갖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3년 동안 자전거로 비포장의 도로를 다니던 그때의 모습이 스크린처럼 스쳐 지나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어느덧 48년이 넘었다. 세월의 흐름에 청춘의 모습은 사라지고 머리가 희끗한 꽃 중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정년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려고 한 초등학교의 당직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오자마자, 아내와 같이 오전 8시경에 간편한 옷차림을 하고 모임의 장소인 내속리면 사내리 부근의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대전 시내를 벗어나니 녹음으로 우거진 산과 들녘이 눈에 들어온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농촌의 풍경이다. 허허벌판에 어린 모를 심은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모들이 자라 초록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차는 결초보은의 고장이라는 보은으로 접어들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성(城)인 삼년산성 못가서 왼쪽인 '종곡리' 방향으로 가니 길 옆으로는 대추의 고장답게 대추밭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대추밭을 보니 붉은 대추가 생각 나 입안에 침이 고인다.
오르막을 지나니 터널이 이어진다. 터널을 나오니 내리막길이다. 가다보니 보은의 상징인 정이품송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세월의 흐름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는데, 부러지고 고사된 가지가 많았는지 나무관련 종사자의 노력에도 좌우대칭이 맞지 않은 채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본 모습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근처에는 연꽃들이 수줍은 듯 봉오리들이 활짝 피어 사람들을 잠시 쉬어가라고 유혹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듯 보인다. 필자도 아내와 같이 연꽃들을 배경으로 사진 한 컷을 찍으며 잠시나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본다. 사진 동호회에서 출사를 나왔는 지 여러 대의 카메라가 눈에 띈다. 활짝 핀 연꽃은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마력을 지닌 것 같다. 또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연꽃 구경을 한 후 조금 가다보니 '보은수정초등학교'가 보인다. 이곳은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인지 냇가에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어릴적 뛰어놀던 고향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
좁은 포장된 농로 길을 가다보니 주차해 놓은 차 2대가 눈에 띈다. 오늘 모임을 주선한 유광철 회장의 제2의 집이라고 한다. 집의 외관부터가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하게 한다. 대문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사람들을 반기고 있고, 집 뒤에는 나무들이 울창하고 커다란 바위가 있어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마당에는 이름 모를 꽃과 푸른 잔디를 심어놓아 오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난다. 총무를 맡고 있는 이규열이 어제부터 와서 햇볕 차단용 그늘막을 치고 대형 고기를 구울 수 있는 그릴을 준비하고 먹을 음식을 장만하느라 고생을 했다고 한다. 봉사정신이 투철하지 않고서는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고마움이 앞선다.
부부동반으로 동기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의정부에서 온 서예가로 유명한 문홍수, 서울에서 온 구자익, 남양주에서 한균석, 수원에서 조현준, 옥천에서 이무영, 보은에서 김홍희, 임헌기, 박영수, 청주에서 김학영 등 10여 명 이상이 참석했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현직에서 물러나 꽃 중년으로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동기들이 있어 아쉽기만 했다.
참석한 동기들과 사모님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모두들 밝은 표정들이다. 오늘의 모임을 기대하고 온 것 같다. 그늘에 앉아서 담소를 하며 준비한 음식인 삼겹살과 소고기를 구워 먹는데, 불판의 열기와 폭염으로 온몸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야만 했다. 남편들을 따라온 아내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웃음꽃이 피어난다. 속리산 자락에 위치해서인지 산 정상에는 운치가 있는 바위들이 호위하듯 내려다보고 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소화도 시키고 산책도 할 겸해서 법주사 근처에 있는 '세조길'를 걷기로 했다. 입구에 있는 오리 길은 나무그늘로 인해 시원함과 맑은 물로 아이들이 물놀이 하기에 좋은 곳 이었다. 물장구치는 아이들을 보니 초등학교 2학년의 손주 녀석을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예전에 매표소가 있던 곳을 지나자 '세조길'이 시작되었다.
세조길이란 조선시대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나러 가던 길이자 피부병에 걸렸을 때 요양차 속리산을 왕래했던 길로 전체적으로 평탄한 길로 이루어져 있다.
녹음이 우거진 나무 숲길을 따라 조성된 길을 걷노라니 폭염이 내리쬐고 있는 현실을 잠시나마 잊어버릴 정도였다. 힘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법주사 입구에 다다르니 하마비(下馬碑)가 눈에 띈다.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는 말을 타고 가다가는 반드시 내려야한다는 존경의 표지석이라고 한다. 하마비는 조선시대에 종묘나 궁궐 앞에 세워 놓은 석비(石碑)로 점차 확대되어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일행들은 법주사 경내로 가지 않고 저수지 둘레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 복천암 근처까지 가다가 되돌아 나왔다. 중간에 주막처럼 태평 휴게소에서는 오고가는 산행객들에게 시원한 막걸리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각종 음료를 팔고 있었다. 막걸리 한잔이 생각났지만, 차를 가져 왔기에 화중지병(畵中之餠)처럼 입맛만 다셔야 했다.
숲속의 냇가는 투명한 유리처럼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기암괴석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견줄만한 것 같다. 속리산은 말 그대로 속세를 떠난 사람들이 사는 곳처럼 산수가 아름다운 곳이라 할 만하다.
'세조길'을 걸으며 청춘의 끓는 피는 아니지만, 항상 건강하게 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숲속 길을 빠져나오니 폭염의 열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안긴다. 어느덧 오후 4시가 넘었다. 사람은 만나면 헤어지는 법인가 보다. 어느 새 헤어질 시간이다. 오늘 동기생 모임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끝까지 애쓴 유광철 회장과 이규열 총무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부부동반으로 참석하여 자리를 빛낸 농업과 동기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많이 사귀라고.
어느 가수가 부른 유행가 가사를 보면 '보석보다 자네가 좋다' 라고 하지 않는가?
1970년대 초·중반 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내년에 다시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고 잘 지내기를 빌어본다.
덕천 염재균/수필가
염재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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