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조선 시대에는 책을 통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려는 욕구가 넘쳐났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는 조선 후기의 도시 풍경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림 1). 그림을 살펴보면 책에 둘러 싸여 있는 서적 중개상 책쾌와 책을 사고자 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책의 내용을 훑어보는 인물과 책에 관련하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작자 미상의 책쾌(태평성시도). 조선후기 국립 중앙박물관 소장 |
유희춘(柳希春, 1513-1577)이 작성한 『미암일기(眉巖日記)』에 따르면 "책쾌 송희정이 『여지승람(輿地勝覽)』을 가져왔다. 또한 조선을 다녀간 중국 사신들의 문집을 거래하는 일을 의논하고 돌아갔다"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여지승람』은 우리나라의 지리서로서 각 도(道)의 지리와 풍속 등 여러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나아가 중국에서 건너온 서적도 조선 사회 내로 유입되었다. 책쾌의 등장으로 인하여 시간적, 지리적으로 다양한 활동이 불가했던 당시 조선 사회 내에 새로운 정보 열풍이 불어왔다.
조선 시대 선조들은 책에 대한 사랑이 지대했음은 분명하다. 이는 조선왕조 중 가장 독서와 책을 사랑했던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영향이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조는 궁궐 정전의 어좌 뒷 편에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대신 <책가도(冊架圖) 병풍>을 배치하였다.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그려진 <책가도>는 책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왕의 일기라고 불리는 『일성록(日省錄)』에서는 정조가 바쁜 업무로 인해 책을 읽지 못할 땐 책가도 병풍을 통해 스스로 그 즐거움을 채워 넣는다 하였다. 이러한 일화로 책이 주 소재로 그려진 <책가도>는 정조 때부터 크게 유행하면서 민화(民畵)의 소재로도 사용된 정황을 통해 신분을 막론하고 선조들의 책에 대한 관심도를 확인할 수 있다.
책가도 병풍, 조선후기.국립 고궁박물관 소장 |
필자는 때때로 이상한 상상을 하곤 한다. 모든 전자기기가 멈추면 그때의 우리들은 종이로 된 책을 다시 찾을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종이책과 전자책 중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렸을 적 신간 도서가 나오면 부리나케 달려갔던 동네 서점에서 풍겼던 종이 냄새와 그 분위기가 그리울 뿐이다.
최정민/평론가, 명지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수료
최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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