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다. sns를 뒤적이다 구례 화엄사 홍매화 축제를 한다는 글을 봤다. 나는 일을 급히 마치고 친구한테 전화를 한다. 마침, 친구도 어딘가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며 무척 반가워했다.
우리는 목적지를 구례 화엄사로 정하고 바로 떠났다. 여산 휴게소에서 숙소 검색을 해보니 마땅치가 않다. 시간도 어중간하니 오늘은 남원에 가서 춘향이도 보고, 월매 아지매 한테, 좋은 처자 있는가 물어보자며 친구가 킥킥거린다. 우린 남원으로 향했다.
그 유명한 진주 촉석루와 쌍벽을 이룬다는 광한루 주차장에 들어서자 주차비 2천 원을 요구한다. 길을 건너 안으로 들어가자 호수가 보인다. 호수에 반영된 나무와 정자. 그리고 공작 한 쌍이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노니는 게 신기하면서도 아름답다.
"안온한 곳 호수 위에/ 유유히 봄빛을 즐기며,
무언의 사랑을 주고받는/ 한 쌍의 원앙
아무 걱정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실에 만족하는 삶.
파문은, 아름다운 대화가 되고,
사랑은 파장의 여운처럼, 호수에 향기를 뿌린다."
바로 저 원앙들의 모습이 행복이란 생각을 해보며, 우리 인간의 행복한 모습은 어떤 것이고, 만족은 어디까지 인지를 잠시 생각해 본다.
아름답게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춘향관과 월매관을 끝으로 공원을 나왔다. 공원주변에 음식점이 많았다. 추어탕이 유명한 남원이지만, 명태찜을 먹으러 갔다. 깔끔한 반찬에 공짜로 주는 막걸리가 미소를 짓게 한다. 또 호텔촌이 1.2km에 있어 초행자도 관광과 숙식을 걱정 없이 해결할 수 있도록 조성이 되어 있었다.
편히 하룻밤을 쉬고, 홍매화 축제가 시작되는 화엄사를 향해 약 35km를 달려간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을 향해 올라간다. 지난 시월에 왔을 때, 홍매화 개화시기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흘러가듯이 본 뉴스에서 홍매화 축제가 있다는 소릴 듣고 깊이 생각도 않고 떠난 여행이다.
불이문을 지나자 처음으로 보이는 매화나무 주변에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게 오고 간다. 그러나 매화는 아직 활짝 웃기에는 이른 시기다. 아쉬웠지만 일찍 핀 꽃 몇 카트 찍고 위로 올라간다. 절 마당에 방송국 카메라도 보이고 행사 준비가 한창이다. 전통문화재 조각전도 열리고, 사진 콘테스트도 한단다. 기간은 2월 25일 ~ 3월 23일까지다.
좌측으로 올라가 천연기념물 홍매화 나무를 본다. 지난 시월 이곳에 왔을 때 특이한 나무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조선 숙종 때 원통전과 각황전의 중건 기념으로 홍매화를 심었다고 한다. 위치는 원통전과 각황전 사이에 있고, 홍매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태로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한다.
대웅전 뒤로 조용한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대밭 사이로 조금 올라가자 '구층암과 차 한잔'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암자에 도착하자 큰 모과나무가 있다. 이렇게 큰 모과나무는 처음 본다. 암자의 기둥도 모과나무로 되어있다. 벽에는 아름다운 그림과 탁자 위에 산수유 꽃병이 놓여 있다. 벽면이 바탕이 되고 그림과 꽃병의 매치가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 (어떤 스님이 그렸는지 보고 싶었다.) 이곳은 모과나무 자생지역으로 역사가 깊다고 한다.
절 지붕에 매달린 풍경 모습이 외롭게 보이면서도 아름답다. 잡념이나 어지러운 생각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올 때, 회초리를 들듯이 마음에 종을 울리는 풍경소리는 슬픈 듯 외로운 듯하면서도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 된다.
때론, 고즈넉한 산사에서 한 일주일만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도 싶고, 온몸을 혹사시키며 무한정 정처 없이 가고도 싶다. 이렇게 엉뚱한 생각에 잠길 때, 조금 앞에 무료 찻집 간판이 보여 들어갔다.
찻집에 들어가자 먼저 있던 분들이 나가고 봉사하는 분과 담소를 나누며 댓잎차를 마신다. 이곳에서 자생하는 댓잎을 스님이 채취하여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한다고 한다. 차를 마시자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이 코를 스치며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려간다. 많이 드셔도 좋다는 말씀에 거듭 석 잔을 주는 대로 마셨다. 역시 산사에서 마시는 차, 넉넉한 마음으로 마시는 차는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마음이 차분해지며 기분이 좋다.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산사를 내려왔다. 흐렸던 날씨는 따스한 햇볕이 피부를 스치며, 부드럽게 나를 보며 웃는다. 넉넉하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김윤수/수필가
김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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