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닭 없이 가슴 한 켠이 휑하게 느껴지는 것이 봄이 온 것 같다. 오늘이 경칩, 봄이다! 그러고 보니 이른 아침 거리에 떨어진 나뭇잎이 간밤에 내린 가랑비에 젖어있는 것을 보고 심쿵했던 것도 봄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나 홀로 식당을 찾아 밥 먹는 것을 꺼리는 심리는 여전히 상당하다. 언젠가 본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원제 Mean Girls·2004)에서 주인공 케이디(린제이 로한)는 아프리카에서 살다 미국 고등학교에 전학을 온 후로 점심을 함께 먹을 친구를 갖지 못했다. 결국 화장실에서 식사를 했다. 혼자 숨어서 먹는 모습은 외톨이의 소외감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 화면에 슬쩍 내 모습을 대입해 보곤 했다.
요즘은 대학가에서도 혼밥족이 부쩍 많아졌지만 일부는 소외돼 있다는 느낌이 싫어 혼밥을 피한다고도 한다. 이들은 혼자 먹느니 차라리 굶는 것을 택한다니 말만 들어도 울컥했다.
가끔이지만, 내가 지나가는 거리에서 땅콩을 파는 분이 있었다. 그는 연세가 지긋하신 남성분으로 좌판을 펴고 앉아 둥근 플라스틱 용기 안에 됫박 딱 한 개만 놓고 있다. 됫박에는 땅콩이 가득 담겨있다.
나는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땅콩을 샀다. 맛보다도 팔아주기 위해서다. 냉동고에 넣어놓고 심심할 때 꺼내 맛나게 먹는다. 하루는 저녁나절 그 곳을 지나가게 되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러보니까 저만치에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대개는 아침에 그곳을 지나가기에 저녁에까지 있을 줄 몰랐는데 아직 계시다니 기뻤다.
그 거리는 네거리에 면해있어서 항상 혼잡하다. 그날은 저녁나절이어서 더 혼잡했다. 나는 손을 내 젓듯이 인파를 헤치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런데 방금 보이던 그분이 안보였다. 그새 가신건가해서 되돌아오려다가 보니 구석진 곳에 얼굴을 숙인 채 뒤돌아 앉아 계셨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분 가까이 갔다. 땅콩이 담긴 됫박이 있는 둥근 플라스틱 용기 옆에 마시다 만 소주병이 한 병 있었다.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했다. 점심도 거른 채 아침부터 저녁까지 속이 헛헛할 때마다 물 대신 소주를 마신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지만 내가 어떻게 해 드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무슨 연유로 땅콩을 파는지는 모르지만, 용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생활고 때문이라면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행인들을 바라보면서 자신은 소외된 처지라고 비관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옆에 우두커니 서있기도 뭣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그분이 그 취한 몸으로 어떻게 집에 가실는지 걱정되었다. 그분 집에 전화를 해드릴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그 후 그 곳에 가지 않아서 그분 소식을 알 수 없지만 나와 동질감을 느껴져서일까, 가끔 그분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술은 잠시 기분 전환은 되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술은 즐거울 때 마시는 건 즐거움을 극대화 시키지만 슬플 때는 오히려 자신을 더 나락으로 빠트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더라도 외로울 때, 혹은 슬플 때 술을 많이 마신다. 그럴수록 자신을 더욱 아웃사이더로 고립시키는 데도 말이다.
타인에게서 멀어져 갈 때 우리는 극도로 외로움을 느낀다. 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술로서 보다는 이웃과의 교류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분도 그 주변에서 좌판을 놓고 장사하는 동년배의 아주머니들과 농담이라도 하며 교류를 가졌다면 그 저녁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아웃사이더는 당당히 자신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내일쯤은 그곳에 한번 가봐야겠다. 이번에는 땅콩을 사면서 넌지시 말도 건네 보려고 한다. 그날 댁에 잘 가셨냐고.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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