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허균이 왜 괴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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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허균이 왜 괴물일까?

정온/수필가

  • 승인 2024-01-23 10:49
  • 수정 2024-01-23 10:5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교산 허균 (蛟山 許筠, 1569~1618)에 대한 생각좀 해보자.

"허균은 천지 간의 한 괴물이다. 허균의 죄명이야말로 신하 된 입장에서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것이었는데, 수레에 매달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고 그 고기를 씹어 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광해 10년 1618년)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애제자가 선물해 준 전기방석에 앉아 마음은 말을 타고 조선시대로 간다. 신분이 무엇이 중요한가?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일 뿐이다. 돈이 없어도 덜 배워도 잘생겨도 못생겨도 심성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허균이 떠나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선 긋기 놀이를 좋아한다. 중력은 언제나 같았다. 지구는 모두를 똑같이 당기는데 우리는 왜 밀어내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조선의 악령이라 불렸던 허균의 이야기이다. 조선의 이단아 허균은 서경덕의 제자이자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엽(曄)의 막내아들이다. 옛 법을 어기고 마음대로 자신의 본능에 충실했다. 어머니 상을 치르고 며칠 후 기생과 어울리고 서얼들을 관아에 불러들여 함께 살기도 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골칫거리였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고려는 만들었지만 조선은 철저히 통제했다. 국가에서 소수 양반, 지배층만이 책을 읽게 했다. 허균은 이것을 알고 한글로 글을 지었다. 그는 글의 위대한 힘을 잘 아는 자였고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꿈꾼 조선의 인본주의자였다. 수백 편의 시를 암송했고, 직접 한글로 운문을 적은 글을 통해 훈민정음을 명나라에 알렸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은 안 바뀌니 신기하다. "다윈의 진화론"을 넘어선 난 "정온의 퇴화론"이라도 써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진화한 건 아무것도 없다. 기술이나 기기가 진화했을 뿐이다. 잔머리는 늘었지만 신념, 의지나 명분은 다 사멸했다. 보석 달팽이나 도도새처럼 멸종했다. 악의 축이라고 비난받고 거열형을 당했다. 사지가 다 찢어졌다.

교산 허균,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위대한 사상가였다. 사회적 약자였던 서자들과 친했으며 들이대고 기생들과 시 짓기 놀이를 했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을 언제나 환영했다.

아버지가 9살에 돌아가셨지만 가족들은 화목했고 학구적이었다. 스승 이달은 아버지는 양반이었지만 어머니가 기생이라 일찍이 관직의 뜻을 버렸다. 서얼 출신들의 고달픈 인생을 허균은 스승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명대사와의 친분이 있었다. 불교의 오묘한 진리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한평생을 헛되이 보낼 뻔했다고 회고했다. 사명대사의 비문을 그가 썼다. 그는 배움에 있어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도 교 사상과 양생술과 신선사상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뛰어난 능력으로 26살에 과거시험으로 문과에 합격했다. 외교 능력은 단연 최고였다. 명나라에 잘 보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의 뛰어난 역량이 빛을 발했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은 허균의 탁월한 재능을 감탄했다. 누이 허난설헌의 시집은 명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가 명나라를 방문했을 때 "천주실의"를 가지고 왔다.

형 허봉과 누이 허초희(허난설헌)를 잃고 24살, 임진왜란에 아내와 자식이 죽었다. 모래폭풍이 땅을 뒤집는 순간, 붉은 흙먼지처럼 불행은 거침없이 몰려왔다.

기생을 농락하고 비밀리에 온갖 만행을 다하는 양반들과 달리 그는 그들을 동등하게 대우했다. 계랑(이매창)과 시를 주고받았다. 심지어 그녀가 요절했을 때 애도 시를 썼다. 10년 동안 정신적으로 사랑한 여인이었다고 기록을 남겼다. 파격적인 사랑의 행보는 조선의 양반들을 경악하게 했다.

광주 기생 산월, 서울 기생 낙빈… 오아시스 같은 기생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시를 논했다. 뛰어난 학문의 경지는 모두가 인정했다. 허균은 총명하고 학식이 높으며 자유롭고 방탕했다. 복직과 파직을 거듭했다. 자유분방함과 솔직함은 용서받을 수 없는 사건이 되어 비난을 받았다. 사헌부의 미움을 받았고 역사상 가장 많은 탄핵을 당했다. 시대가 버린 탕아이지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1618년(광해군 10) 8월 남대문에 격문을 붙인 남대문 익명 사건이 일어났다. 허균의 심복 현응민(玄應旻)이 붙였다는 것이 탄로 났다. 허균과 기준격(허균의 제자)을 대질 심문시킨 끝에 역적모의를 하였다고 동료들과 함께 저잣거리에서 거열형에 처해졌다.

어쩌면 그는 정말 반란을 꿈꾸었지도 모른다.(제발 그러했기를!) 역모사건의 주동자로서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혁명을 꿈꾸는 조선의 체 게바라 같은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정당한 절차 없이 저잣거리에서 "할 말이 있소이다"라고 소리쳤으나 이이첨(李爾瞻, 1560~1623)에 의해 묵살되었다. 위대한 허 씨 가문의 몰락 5년 후, 광해군이 인조반정으로 쫓겨났다.

역모를 부인할 변론의 기회도 없이 죽임 당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난 그의 사상을 존경한다. 어느 시대나 앞서가는 자를 감당하기는 어려웠나 보다. 시기와 질투와 모함은 어디든 잠복해 있었다. 특권층 양반의 나라 조선은 사실 악마의 나라였다. "평등과 공정은 없고 천하에 두려워할 이는 오로지 백성뿐이다. "라는 사실을 설파했다. 그의 생애와 논설 호민론(豪民論)은 시대를 기다리며 녹색혁명을 꿈꾸는 겨울나무 같다.

허균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가 그립다. 시대를 바꾸고자 한자, 자유주의자, 사상의 자유를 추구, 염불과 참선 도교에 관심을 가진 깨인자였다. 임진왜란 당시, 사상 유재론과 호민론 신분 차별 제도 폐지와 민주주의, 평등사회를 꿈꾸었다는 건 천재적 발상이다. 꿈을 꿀 수는 있지만 미친 실천력은 더 존경스럽다. 조선은 허균도 허난설헌도 품지 못했다. 꿈을 향한 질주와 엎질러진 이상의 극단적인 예이다. 천재는 시대마다 나타났지만 사회는 다름을 용인하지 않았다.

제자가 물었다. 정치인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요? 애민정신이다. 정치는 능력과 재능이 아니라 "애민정신"이다.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 호민이 되어 혁명을 꿈꾼 자이다. "이달"에게는 시를 배우고 "사명대사"로부터 불교를 배웠다. 은색 억새처럼 흰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50세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하늘을 나는 로켓 신발에 헬멧을 쓰고 우주로 산책 가고, 공기방울로 만든 옷을 입고 심해에 일기장을 숨기러 가는 시대, 잠자고 싶을 때 타이머를 맞추고 캡슐로 들어가고, 우울, 슬픔, 분노, 기쁨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알약을 먹는 시대가 오더라도 허균이 꿈꾼 이상 세계는 절대 오지 않는다.

코로나 3년, 여전히 마른 기억은 잘 보존된 미라를 감싼 리넨처럼 내 몸에 남아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서 맘대로 싸지르는 글! 그런 시대도 있었구나 하면 된다. 내 울음소리를 잡아 54번째 지층에 얹어둔다. 허공에 보이지 않는 길을 닦는다. 차가운 달의 이마에 따듯한 손을 얹어준다.

이선균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그가 그립다. 달빛 스산한 밤, 남자는 가시처럼 파고드는 외로움의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토굴이든 찾아야 했으리라. 시대는 위대한 예인을 잃었으며, 그의 아픔과 두려움이 느껴진다. 허균이 세상을 떠난 지 4백 년이 넘어도 난 여전히 그를 흠모한다. 끝없이 추락하는 데 바닥을 알 수 없다는 건 공포이다. 살아도 살아도 지구는 타인의 별이다. 내 병이 나으면 글도 끝나리라!

허균의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정온/수필가

정온 수필가-1
정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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