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영 (사)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 |
여야 간 찬반도 치열하다. 한미일 안보 강화와 미래를 위한 외로운 결단이었다는 것이 여당의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역사의식 없는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이 빚은 무능과 오만한 외교 참사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동원노동자 해법을 이렇게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데는 왜곡된 역사의식이 내재돼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통령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간단한 이력을 살펴보면 그 이유가 명징해진다.
윤석열 대통령의 할아버지 윤호병 옹은 1898년에 태어나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사망했다. 생전에 관직을 지냈거나 기록에 남을 만한 어떤 행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도쿄고등상업학교(현 히토쓰바시대학)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20년대에 일본으로 유학 갈 정도였으니 경제적으로나 꽤 부유하게 살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할아버지가 졸업한 도쿄고등상업학교는 그의 아들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아버지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유학한 히토쓰바시대학의 전신이라는 사실이다.
아들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1931년 충청남도 논산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공주농업고등학교(현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충청의 아들'이라고 홍보했던 근거가 이렇듯 아버지의 출생지에 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석사 졸업하고 한일수교 직후인 1967년 일본 문부성 국비 장학생 1호로 선발돼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대학원에서 유학했다는 사실은 언론과 각종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윤기중 교수는 1997년까지 한양대 교수와 연세대 교수를 지내며 통계경제학자로서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냈고 통계학회와 한국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 과정에서의 정치적 활동들은 찾기 어렵지만, 그의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있다. 소위 '뉴라이트운동'이 한창이던 2006년 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국선언'이 있었는데 윤기중 교수가 이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선언문의 내용은 북한 핵에 대한 규탄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를 주도한 뉴라이트 단체들은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정당성을 옹호하는 역사 인식을 가지고 활동해왔다.
뉴라이트의 대표적 인물인 유석춘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다"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할 명단을 발표하자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저해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짐작하건대 윤석열 대통령의 내재된 역사관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내려온 일본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은 특별히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럽게 터득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방일에 앞서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에노역에서 내려 아버지 아파트까지 갔다"고 회상하며 "선진국답게 아름다웠다", "일본 분들은 정직하다"고 하는 건 '립서비스'가 아니라 '진심'을 담은 말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에드워드 햇릴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을 남겼다. 지도자의 역사관은 자연인일 때의 역사 인식에 매몰돼선 안 된다. 그런데 일본에서 손꼽히는 명문대학에서 유학한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둔 자연인 윤석열의 역사 인식은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민족의 자존과 국익을 위한 역사 인식이 아쉽기만 하다.
/오광영 (사)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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