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보고서들은 한국의 물질적 삶의 질이 더 이상 여느 국가에 뒤지지 않음을 확인해준다. 그렇다면 삶의 질과 행복 수준 모두에서 높은 점수를 보여주는 북유럽 국가들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다양한 연구 결과는 '사회적 신뢰'(social trust) 또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에서 확연한 격차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신뢰는 자신이 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the others)의 정직성, 청렴 및 신용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신뢰는 다른 사회구성원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나타낸다.
사회적 신뢰가 낮다는 것은 다른 구성원들의 도덕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만이 바르게 행동한들 표도 나지 않고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사회적 신뢰가 낮은 사회는 반칙과 범법이 쉬운 선택이 된다. 반칙이 관행처럼 되어버린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항상 긴장하고 대립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 반면, 높은 사회적 신뢰는 구성원 사이의 거래비용을 낮춤으로써 협력과 갈등 조정을 쉽게 만든다. 광범위한 통계 결과는 사회적 신뢰가 높은 국가일수록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며, 부패가 낮고, 국민이 행복하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OECD 행복 수준 연구에서 사회적 신뢰를 측정하는 "(한국) 사람 대부분을 신뢰할 수 있다"의 질문에 응답자의 32.9%만이 동의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의 60%를 상회하는 결과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영국경제연구소의 '2023 레가툼번영지수' 보고서의 한국의 삶의 질 종합 순위는 167개국 중 29위다. 반면, 사회적 네트워크, 개인 간 신뢰, 사회적 관용 등을 측정되는 사회적 자본의 종합 순위는 107위로 나타났다. 해당 연구에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가 삶의 질 탑4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 순위 역시 덴마크(1위), 노르웨이(3위), 스웨덴(4위), 핀란드(7위)의 순으로 최상위권이다.
사회적 신뢰를 연구한 북유럽의 대표적인 정치학자 Bo Rothstein 교수는 북유럽의 사회적 신뢰가 높은 이유를 정부 신뢰에서 찾는다.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 엄격하게 심판을 보는 정부만 있으면 심판을 믿고 상대방 선수의 반칙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Rothstein교수는 사회적 신뢰가 정부의 '불편부당성'(impartiality)에서 유래한다고 결론 내린다. 정부의 불편부당성은 정부가 어떤 이념, 어떤 편, 어떤 무리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지킨다는 뜻이다. 불편부당성의 인식은 정부 차별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Rothstein교수는 북유럽 국가의 불편부당성이 사회계층에 관계없이 평등을 경험하게 해주는 보편적 복지 제도와 불가분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2023 레가툼번영지수' 보고서의 한국 정부 신뢰 순위는 사법 시스템 155위, 정치인 114위, 행정부 111위 등 모두 하위권이다. 더욱 짙어진 이념적 색채 속에서 한풀이 하듯 기존 정책을 뒤엎고, 검찰을 도구로 삼아 사법시스템 정치화를 강화하며, 선별적 복지라는 이름 아래 이미 구축된 보편적 복지제도마저 무력화하는 대한민국 국정과 대전 시정의 모습 속에서 국민과 시민을 행복으로 이끄는 마지막 연결고리인 사회적 신뢰의 회복은 요원해 보인다.
곽현근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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