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영사관은 대한제국시대 1903년에 짓기 시작했고 1905년에 완성됐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벽돌, 청석, 화강암을 적절히 사용해 우아하고 좌우 대칭 고전주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20세기 전반기의 중요 건축물이다.
이후 1982년 강남으로 이전했고 한국의 첫 외교관인 브뤼셀 주재 박용와씨의 부임으로 공식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켰다.
영사관은 침대칸을 개발한 리에즈의 나걸매켈스를 책임자로 내세워 당시 벨기에의 주요 회사인 브뤼셀 은행, 코크릴, 극동산업조합을 매우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러나 한국 주변의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돼 러시아와 일본 간의 경쟁이 발발하면서 한국에 대한 벨기에의 희망이 어두워졌다.
일본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제압했고, 한국은 1905년 보호 조약, 1907년 천황 퇴위, 1910년 합병 등을 통해 모든 자치권이 거부당했다.
당시의 권력은 주권을 잃었지만 새 총영사인 조세 브리보시아는 한국 해안을 표시하는 최초의 등대를 벨기에인에게 짓게 했다.
그러나 벨기에 관계들은 1918년부터 1945년까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공산주의 침공의 극적인 상황에서 벨기에인들은 돌아올 것이다.
베이죠소랑쥬 명예기자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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