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 노무사 |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의 밑그림을 그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고용노동부와 약 6개월간의 집중논의를 거쳐 지난해 12월 12일 근로시간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권고안을 발표하였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근로시간의 유연화이다. 현행 3개월 단위, 6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년 단위까지 늘리고, 근로자가 출퇴근 시간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도의 단위기간을 3개월로 늘리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일감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일감이 없을 때는 충분히 쉬자는 논리이지만 사실상 사용자에게는 성수기 때 연장근로수당의 부담 없이 일을 시키고, 비수기 때 놀리면 된다는 취지가 된다. 하지만 근로자는 수개월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 위험과 임금 감소라는 위협이 그대로 전가된다.
이미 국회는 지난 2021년 1월 노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6개월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 바 있다. 그리고 2년이 안되어 아무런 보상 조치도 없이 다시 1년까지 단위기간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권고안의 근로시간의 유연화를 노동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다.
둘째,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공정한 임금체계 마련이다. 권고안은 공정한 임금체계 마련의 걸림돌이 연공에 따른 호봉제를 개혁하고 업무의 가치와 개인의 능력을 반영하는 직무-직능급을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능력있는 후임자보다 월급이 많다는 것은 특히 노동시장에 뛰어든지 얼마안되는 MZ세대에게는 당연히 참을 수 없는 불공정이다.
임금체계의 개편으로 회사 내 임금 불공정이 해소되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 오는 임금격차도 해소될까? 지난 20년간 대기업, 정규직에 비해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은 그 격차가 점차 벌어져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납품단가 후려치기, 비정규직 고용의 남용 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공정한 임금체계의 도입은 결국 절반짜리 파이를 어떻게 공정하게 나누느냐의 문제로 축소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권고안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해소를 위해, 원하청 공정거래 질서확립이나 비정규직 사용제한 등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화물운송료 후려치기에 맞서 안전운임을 보장하라는 화물연대 운송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노동계의 주장에 이 정부의 노동개혁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은 노동관계법 개정이라는 구체적인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에만 현실화될 수 있다. 사회적 합의는 노·사·정 모두의 공동이해와 양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의 위험과 임금 감소에 대한 대책이나 보상 없이 노동시간의 탄력적 운영만을 얻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이나, 상시·지속 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사용의 제한 입법등과 같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할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당장 임금이 삭감될 수도 있는 임금체계의 개편에 노동계가 동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어쨌든 이 권고안은 노동개혁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윤석열 정부의 첫 제안이다. 이제 정부는 이 제안을 노동계에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지, 노동계의 양보에 대해 사용자와 정부의 양보는 무엇인지 노동계와의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이번 정부의 노동개혁 방안이 과연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의 반노조 정서에 편승하여 노동계를 불공정 집단으로 낙인찍어 지지율의 반등을 노리자는 얄팍한 셈법인지는 앞으로의 정부의 대화의 노력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훈 노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