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거품 없는' 거품의 힘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거품 없는' 거품의 힘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 승인 2022-12-29 17:01
  • 신문게재 2022-12-30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울(drop), 기포(bubble), 거품(foam)은 서로 비슷한 사물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사실 엄연히 다른 물리적 실체다. 방울은 공 모양의 액체를, 기포는 속이 기체로 차 있는 액체막을, 거품은 기포들이 함께 모인 상태를 지칭한다. 그중에서도 '거품'은 아침 세면, 양치, 면도, 샴푸를 통해, 그리고 정오의 커피와 하루 끝 시원한 맥주 한잔에 담겨 우리에게 친숙하다.

과학적으로 거품은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해주는 계면활성제로 인해 액체의 표면장력이 낮아졌을 때, 액체막이 공기를 분할하면서 발생한다. 혹은 강제로 액체에 기체를 불어넣었을 때 생성된다. 하지만 거품은 영구적이지 않고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 이틀이 지나면 사라진다. 기체와의 경계층에 닿아있는 액체가 중력으로 흘러내리면서 액체막의 두께가 점차 얇아지고 주변 기포와 합쳐지다가 결국 모두 사라지는 순서다. 시장에 자산이 과도하게 공급됐을 때를 거품경제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쉽게 소멸되는 거품의 특성만을 따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자니 거품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그러나 정작 거품의 유용함을 살펴본다면, '거품 없음'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즐기는 빵과 맥주는 대표적인 '거품음식'이다. 효모는 발효과정에서 당과 반응해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든다. 이산화탄소가 빵을 부풀리는 동안 생기는 작은 구멍들이 얼마나 고르게 분포하는지가 좋은 바게트의 기준이다. 옛날 유럽에서는 발효된 부드러운 빵은 귀족들을 위한 것이었고, 서민들은 효모가 없는 딱딱한 빵을 먹었다고 하니. 효모가 큰 기준점이 된 셈이다. 한편, 맥주잔 위에 올라간 거품은 맥주의 향이 날아가지 못하게 가두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슷한 원리로 에스프레소 커피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크레마 거품은 쓴맛을 낮추고 향을 풍부하게 해준다. 카푸치노의 경우 우유 거품으로 만들어진다. 그 외 수프,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푸딩, 생크림 등 거품을 이용한 다양한 먹거리는 음식의 맛과 향을 더하고 우리의 삶을 한층 고급스럽게 높여준다.

거품에 한층 자세히 접근해, 이번에는 기포를 들여다보자. 기포를 아주 작게 만들면 마이크로버블, 나노버블이라 불리는 미세기포가 된다. 보통의 기포는 부력에 의해 물 표면으로 떠올라 사라지지만, 마이크로버블은 기포를 채운 기체가 물속에서 서서히 녹으면서 사라지는 특징이 있다. 마이크로버블은 기포 내부 압력이 올라가고 기포 표면에 모인 이온들을 더욱 응집돼 세정효과가 뛰어나다. 공장 배수, 호수, 바다 곳곳에 도사리는 오염수 속 유해화학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것이다. 크기가 더욱 작은 나노버블은 강하게 응집된 이온들이 안정 상태를 유지하며 장기간 물속에서 머무른다.



열로 인해 높아진 물의 온도가 섭씨 100도에 이르는 순간, 그때부터 온도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열이 모두 기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액체 형태의 물을 기체 형태인 증기로 바꾸려면 앞서 물을 섭씨 0도에서 100도까지 올릴 때 필요했던 열의 5.4배가 필요하다. 라면을 끓일 때 냄비 바닥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기포가 한 줄로 쭉 올라온다. 그러다가 점차 바닥 전체에서부터 기포가 발생해 위로 올라와 서로 섞인다. 기포들이 서로 부딪치고 합쳐지는 역동적인 움직임은 냄비 바닥에서 라면 물로 전달되는 열에너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을 정확한 숫자로 계산해내는 것은 현재 수준의 과학에서도 매우 도전적이다.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자면, 물을 끓여 기포를 만드는 것은 많은 열을 제거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원자력발전소에 탑재된 핵연료가 내뿜는 강한 에너지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과열돼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아야 한다. 현재 상용화된 대부분의 원자력발전소는 물을 냉각수로 이용하는데, 비상상황 시 냉각수를 기포로 바꾸는 방식으로 탁월하게 열을 제거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그리고 다양한 산업분야에 기여하는 것이 거품의 위력임을 알아둘 때다.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현장취재]한남대 재경동문회 송년의밤
  4. 대전시주민자치회와 제천시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자매결연 업무협약식
  5.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대전.충남 통합으로 세계 도약을"
  1. 한화이글스, 라이언 와이스 재계약 체결
  2.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3. 천안시의회 김영한 의원, '천안시 국가유공자 등 우선주차구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상임위 통과
  4.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5.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