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
과학적으로 거품은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해주는 계면활성제로 인해 액체의 표면장력이 낮아졌을 때, 액체막이 공기를 분할하면서 발생한다. 혹은 강제로 액체에 기체를 불어넣었을 때 생성된다. 하지만 거품은 영구적이지 않고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하루 이틀이 지나면 사라진다. 기체와의 경계층에 닿아있는 액체가 중력으로 흘러내리면서 액체막의 두께가 점차 얇아지고 주변 기포와 합쳐지다가 결국 모두 사라지는 순서다. 시장에 자산이 과도하게 공급됐을 때를 거품경제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쉽게 소멸되는 거품의 특성만을 따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자니 거품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그러나 정작 거품의 유용함을 살펴본다면, '거품 없음'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즐기는 빵과 맥주는 대표적인 '거품음식'이다. 효모는 발효과정에서 당과 반응해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든다. 이산화탄소가 빵을 부풀리는 동안 생기는 작은 구멍들이 얼마나 고르게 분포하는지가 좋은 바게트의 기준이다. 옛날 유럽에서는 발효된 부드러운 빵은 귀족들을 위한 것이었고, 서민들은 효모가 없는 딱딱한 빵을 먹었다고 하니. 효모가 큰 기준점이 된 셈이다. 한편, 맥주잔 위에 올라간 거품은 맥주의 향이 날아가지 못하게 가두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비슷한 원리로 에스프레소 커피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크레마 거품은 쓴맛을 낮추고 향을 풍부하게 해준다. 카푸치노의 경우 우유 거품으로 만들어진다. 그 외 수프,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푸딩, 생크림 등 거품을 이용한 다양한 먹거리는 음식의 맛과 향을 더하고 우리의 삶을 한층 고급스럽게 높여준다.
거품에 한층 자세히 접근해, 이번에는 기포를 들여다보자. 기포를 아주 작게 만들면 마이크로버블, 나노버블이라 불리는 미세기포가 된다. 보통의 기포는 부력에 의해 물 표면으로 떠올라 사라지지만, 마이크로버블은 기포를 채운 기체가 물속에서 서서히 녹으면서 사라지는 특징이 있다. 마이크로버블은 기포 내부 압력이 올라가고 기포 표면에 모인 이온들을 더욱 응집돼 세정효과가 뛰어나다. 공장 배수, 호수, 바다 곳곳에 도사리는 오염수 속 유해화학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것이다. 크기가 더욱 작은 나노버블은 강하게 응집된 이온들이 안정 상태를 유지하며 장기간 물속에서 머무른다.
열로 인해 높아진 물의 온도가 섭씨 100도에 이르는 순간, 그때부터 온도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열이 모두 기포를 만드는 데 쓰인다. 액체 형태의 물을 기체 형태인 증기로 바꾸려면 앞서 물을 섭씨 0도에서 100도까지 올릴 때 필요했던 열의 5.4배가 필요하다. 라면을 끓일 때 냄비 바닥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기포가 한 줄로 쭉 올라온다. 그러다가 점차 바닥 전체에서부터 기포가 발생해 위로 올라와 서로 섞인다. 기포들이 서로 부딪치고 합쳐지는 역동적인 움직임은 냄비 바닥에서 라면 물로 전달되는 열에너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을 정확한 숫자로 계산해내는 것은 현재 수준의 과학에서도 매우 도전적이다.
다른 관점으로 생각하자면, 물을 끓여 기포를 만드는 것은 많은 열을 제거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원자력발전소에 탑재된 핵연료가 내뿜는 강한 에너지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나치게 과열돼 시스템이 망가지지 않아야 한다. 현재 상용화된 대부분의 원자력발전소는 물을 냉각수로 이용하는데, 비상상황 시 냉각수를 기포로 바꾸는 방식으로 탁월하게 열을 제거하고 있다.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그리고 다양한 산업분야에 기여하는 것이 거품의 위력임을 알아둘 때다. 최기용 한국원자력연구원 지능형원자력안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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