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찬바람 분다, 콩대 꺾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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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칼럼] 찬바람 분다, 콩대 꺾어라!

윤강준 수리과학연구소 부산의료수학센터장

  • 승인 2022-12-22 16:22
  • 신문게재 2022-12-23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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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강준 수리과학연구소 부산의료수학센터장
저는 항상 늦가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제가 중고등학교 학창시절 아침에 등교하려 집을 나설 때에 어머님께서 "강준아 찬바람 분다. 학교 마치면 밭에 가서 콩대 꺾어라"라고 하신 말씀이 계절풍처럼 머리에 떠올려집니다.

저는 고등학교까지 시골에서 자랐으며, 1970~80년에는 시골에서 자란 세대는 누구나 그러했듯이 학교를 마치면 집안의 농사일에 손을 보탰습니다. 봄이 시작되면 지난 가을에 심은 마늘과 양파, 유채, 그리고 보리를 수확했고 논에는 모내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면 보리를 추수한 밭에 고구마나 콩, 고추를 심었고 종종 담배를 재배하기도 하였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담뱃잎을 건조하기 위해서 2m 정도의 볏짚으로 만든 새내끼줄에 담뱃잎을 한 줄에 5원 정도 받고 엮었는데, 라면 1봉에 40원 하던 시절에 이 일은 특별히 용돈 벌이가 없었던 시골 학생들에겐 쏠쏠하고도 어찌 보면 유일한 용돈 벌이였습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면 밭에 심은 콩과 고구마 등을 수확했고 그 자리에 다시 다음 해에 거둬드릴 마늘과 양파, 유채, 그리고 보리 등을 심었습니다.

지금이야 농촌의 일들을 농기계의 힘을 빌려 경작하지만, 1980년까지도 대부분의 농사일들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기에 시골생활은 12월에서 2월까지의 두서 달을 제외하곤 힘들고 지난한 농사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을의 농가들은 같은 시기에 비슷한 농사를 짓기에 모든 농가들이 많은 노동력을 동시에 필요로 했습니다. 마을의 인구는 한정적이기에 제한된 노동력으로 농사일을 해결하기 위해 품앗이라고 하는 노동력을 교환하는 방법을 통해 이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때 저희 집은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농사일을 어머님이 홀로 맡아 품앗이를 해가며 힘들게 일구셨습니다. 모내기를 할 땐, 소와 함께 필요한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 봄철의 대부분을 아침 7시에 들에 나가셨다 밤늦게야 집에 돌아오셨으며, 집에 오시면 바로 쉬지 못하고 4형제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빨래 등 집안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형제들도 봄에는 보리베기, 마늘, 모내기 등을 농사일들을 하였으며 여름에는 고추따기 그리고 가을이 오면 벼베기, 고구마 캐기 등을 하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머님은 등교하는 저희 형제들에게 "찬바람 분다! 콩대 꺾어라"고 하시며 콩꺾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이렇게 지난한 농사철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시골농부들은 한, 두 달 정도의 꿀맛 같은 휴식을 갖지만 이때도 어머님은 손을 놀리지 않으시고, 돈을 벌기 위해서 추운 겨울 바닷가에서 굴이나 바지락 등을 채취하셨습니다. 이렇듯 어느 시골의 어머님들이 그러하셨듯이 저희 어머님은 일 년 365일을 힘든 일들로 가득했으며 제대로 된 휴식을 가지신 적이 제 기억으론 없을 정도로 고달프고 서러운 시골 생활이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인 제가 대학의 수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던 어느 해 겨울, 마을 분들이 동네에 모여 간소한 잔치를 가지셨나 봅니다. 눈이 많이 내린 오후 해질녘에 마을의 한 분이 저의 집에 오셔서 어머님을 모셔가라고 하시기에 잔칫집에 갔더니 어머님이 춤을 추시고 계셨는데 '내 두 아들이 대학이 들어갔으니 졸업할 때 큰 잔치를 열겠다'라고 하시며 울고 계셨습니다. 저희 형제들을 키우시기 위해 청춘과 인생을 희생하셨기에, 그 이후로 지금까지 제 인생의 목표는 꼭 성공에서 고향에 어머님을 모시고 금의환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벌써 40년이 넘게 흘러 어머님을 기억하시고 또 반가이 맞아주실 동네의 어른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고 고향에는 낯선 이들만 있어 어머님이 고향을 찾지 않으신지 10년이 넘으셨습니다.

자신의 즐거움만을 쫓고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동료나 이웃에 대한 배려나 동행에 대한 정서가 메마른 현세대를 보면서, 아픔과 즐거움을 함께하고 공동의 즐거움을 위해서 함께 고통을 나누었던 어릴 적 고향의 정이 그립고,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치신 어머님에 대한 애틋함이 서럽게 다가옵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윤강준 수리과학연구소 부산의료수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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