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
지역주민 사이에 형성된 사회적 네트워크와 신뢰와 호혜의 규범이 '사회적 자본'이다. 동아리, 주민조직,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주민은 상호신뢰와 호혜의 규범을 증진한다. 축적된 신뢰와 호혜의 관계망은 주민들 사이의 협력과 갈등 조정을 쉽게 만든다. 사회적 자본을 형성한 주민들은 지역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협력을 통해 스스로 대응해가거나 지방정부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냄으로써 정부 행동을 끌어낸다. 풀뿌리같이 얽힌 주민 관계망의 파급력을 의식하는 지방정부는 주민의 집합적인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결국 지방정부의 높은 성과는 사회적 자본의 토양 위에서 집합적인 자신감을 가지게 된 주민의 목소리와 참여에서 출발한다.
2020년 출간한 퍼트넘 교수의 '업스윙(Upswing)'이 다시 한번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저서는 1890년부터 2015년까지의 미국 역사를 진단한 후, 미국이 개인주의적인 '나' 사회에서 공동체주의적인 '우리' 사회로 전향했다가 다시 '나' 사회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1950년대까지 각종 사회단체와 공동체 조직을 통해 '호혜의 협동적 이상'을 추구하면서 미국의 1950~1960년대는 협력적이고 화합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띤다. 하지만 현재 미국 사회는 불평등, 정치적 양극화, 문화적 나르시시즘을 특징으로 하는 '나'의 사회로의 하향 추세에 놓이면서 총체적 파국의 위기가 가속화된다. 미국인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나'에서 '우리'로의 회귀, 공동체 회복 노력을 통해 협력과 연대의 상승추세로 갈아타는 것이다.
특별 세션에서 퍼트넘 교수는 1950~1960년대 '우리' 사회를 이끌게 된 역사적 동력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상승추세를 위한 구체적인 처방으로 파괴적인 개인주의 극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념을 가로질러 포용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정치지도자 역할을 강조한다. 보통 시민이 주도하고 참여하는 '풀뿌리 혁신'의 중요성도 잊지 않고 지적한다, 풀뿌리 혁신의 대표적 예는 대전시가 추진해온 주민참여예산제, 공동체 마을계획을 포함한다.
퍼트넘 교수가 '나'로의 하향 추세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를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포용적이며 혁신적인 정치지도자 출현의 기대와 함께 풀뿌리 혁신의 잠재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퍼트넘 교수의 미국 사회 진단과 처방은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공동체 담론과 풀뿌리 기반의 제도화를 통해 '우리'의 상승 기조의 동력을 만들고 기반을 다져온 것은 다행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민선 8기 대전시정은 퍼트넘 교수의 처방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주민참여예산제 예산삭감, 시민공동체국 폐지, 마을공동체사업 예산축소, 시민토론회 청구요건 강화 등의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는 대전시 위정자들의 빈곤한 철학과 리더십을 그대로 보여준다. 철 지난 색깔론과 이념적 덫에 갇혀 '사회'나 '공동체' 이야기만 나오면 극단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민선 8기 대전시 위정자들의 왜곡된 시각과 판단 때문에 대전시가 치러야 할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에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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