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용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책임연구원 |
이와 반대로 돔 밖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숲속에 집을 짓고 땅을 경작하고 동물을 사냥하며 사계절을 온전히 느끼고 산다. 둘 중 어떤 삶이 더 친환경적이냐고 물으면 바보 같은 질문일까. 예상컨대 대부분의 사람은 후자를 더 친환경적 삶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처럼 흔히 사람들은 자연과 가깝게 살아가는 것이 친환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인간의 입장이다. 자연에게도 물어봐야 한다. 자연도 인간이 가까이 오는 걸 좋아할까. 아마 아닐 것 같다.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문명화된 인간은 힘이 세고 제멋대로인 데다가 무엇보다 수가 너무 많다.
먹이사슬의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생존을 위해 더 넓은 면적의 자연이 필요하다. 자연에서 사자 한 무리가 살아가는 영역은 수십에서 수백 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이보다 좁으면 먹이가 부족하여 사자가 굶게 되고 넓으면 초식동물의 수가 급증하여 식물이 황폐해진다. 이것이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자연과 균형을 이루며 지속가능하게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인간에게는 어느 정도의 면적이 필요할까.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아가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인간이 사자보다 적은 면적에서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으로 살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작은 집 한 채를 소유하기도 힘든 현대인들이 들으면 그게 무슨 소리냐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 입는 옷, 숨 쉬듯 사용하는 각종 첨단기기 등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넓은 면적의 자연 환경이 필요하다.
그렇게 따지면 지구의 면적이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의 수는 고작 일억 명 남짓이다. 육지뿐 아니라 바다의 면적을 포함해도 그렇다. 그 이상의 인간이 지구 안에서 지속가능하게 살아가려면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격리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즉 인간은 최소 면적에 밀집해서 거주하고 나머지 공간을 자연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맨 처음에 언급한 미래 풍경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역설적이지만 폐쇄된 돔은 친환경적이다. 이미 우리는 어느 정도 그렇게 살고 있다. 최근 세계 인구가 80억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80억 명의 인간이 도시에 모여 살지 않고 자연에 퍼져서 살아간다면 지구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궤멸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년 전 개봉했던 유명 SF 영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손가락을 튕겨 인구를 반으로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자연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악당은 매우 자비로운 편이었다. 실질적으로는 팔십 분의 일 정도로 줄여야 했으니까.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불어나 버린 인간들을 지키면서 지구와 함께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밀집해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좁은 돔 내부에서 생산하면서도 폐기물은 거의 만들지 않는 발전 방식이 필요하다. 여러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 있겠지만 핵융합에너지를 제외한다면 이렇게 많은 인류가 사용할 만큼 막대한 에너지를 공급할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핵융합이 미래 에너지이고 또 친환경적이라는 건 그냥 하는 주장이 아니다. 핵융합은 우리의 후손이 지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지금 당장은 없어도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시기는 아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다가올 것이다.
남용운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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