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은석 목원대 기초교양학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
설립 후 얼마 되지 않아 큰 내홍을 겪은 대전외고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불안함을 마주하게 된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거론되었던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교육정책의 뜨거운 이슈로 제기되어 왔던 것이다. 결국, 2019년 11월 교육부는 외고, 자사고, 국제고를 유예기간을 둔 뒤 2025년에 폐지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원래 외고는(자사고, 국제고 포함) 5년마다 진행되는 재지정평가에서 지역 교육감의 승인 여부에 따라 존폐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재지정평가에서 실제로 지정 취소까지 이끌어 낸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2019년 교육부가 발표한 외고폐지 정책은 상급기관인 교육부 차원에서 외고, 자사고, 국제고라는 학교 체제와 운영 방식을 규정한 내용을 2025년 아예 삭제하기로 한 것이다.
대전외고 관점에서 지난날을 살펴보면 학교가 문을 연 뒤 초기 5, 6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학교 존폐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운 큰 문제 상황을 마주해왔다. 평화로운 날보다 불안해하며 걱정해야 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셈이다. 이 혼돈의 시기를 겪는 과정에서 지역의 많은 공립 외고들이 운영의 어려움을 마주하게 되었다. 일단 학생 입장에서 학교의 존폐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을 비롯해 내신등급을 유지하기가 힘들고, 전 학년에 걸쳐 외국어 과목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학년이 높아질수록 입시와 관련된 교과 공부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단점들을 마주하고 있다. 학교 측면에서는 공립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근무를 바꾸어야 하는 순환근무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교사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 교육역량을 보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일반 고등학교로 자진해서 전환한 외고도 있으며, 2019년 교육부의 발표와 더불어 COVID-19 상황까지 겹쳐 지원자가 감소로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대전외고의 성과는 독보적이다. 학교 운영 측면에서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이렇게 7개 전공어 체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데 서울의 유명 몇 학교를 제외하고 이렇게 다양한 전공을 유지하고 있는 학교가 없다. 또한,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외국어교육 과정을 성실하게 준수하면서 27년 동안 좋은 입시 결과를 유지하고 있는 학교 또한 유일하다. 그리고 학교 교육역량 보전이 쉽지 않은 상황임에도 비교과 프로그램과 동아리 활동, 입시 지도와 같은 무형의 학교 자산이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다. 대전이라 대전외고를 좋게 보는 것이 아니라 대전외고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쌓아 온 업적이 정말로 외국어고등학교 운영의 최고 사례로 꼽아도 될 정도로 대단하다.
학생 수가 급감하고 있다. 쉽게 개선되기도 어렵고 절대적인 요인이라 교육체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세대들의 인식도 바뀌면서 학생의 선택을 존중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교육제도가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는 외고들은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대면해 온 체제적 불안함을 이겨낸 외국어 교육의 노하우를 보유한 경쟁력을 갖춘 교육자산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시행령의 내용을 없애는 것으로 외고는 쉽게 폐지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시행령의 내용을 만든다고 해서 이토록 경쟁력을 갖춘 외국어 교육의 자산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원은석 목원대 기초교양학부 교수(국제디지털자산위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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