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국 생활을 시작하고 배우려 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지나친 관심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에는 식구들이 하는 행동마저 이해하지 못했다.
샤워를 하고 있을 때 소리없이 들어 오신 고모님, 설거지하는 방법을 알려 주려 하는 또 다른 고모님, 묻지도 않고 내 옷장을 열어 보신 고모님, 소파에 앉으려 하면 억지로 바닥에 앉히는 고모님도 있었다.
신기한 것은 가족이 있고 집이 있어도 매일매일 하루종일 우리 집에 와 있는 것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종교에 대한 지난친 관심이었다.
그 당시 시할머니는 교회를 다니셨다. 매주 한 번 정도 교회분들과 집에서 모이는 날도 있었다. 교회분들이 나를 여러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목사님 말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기도 내용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 날은 한국에 온 것이 후회되기도 했다.
남편이 퇴근 후 내가 우는 것을 보고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 미안해 라는 말을 했다. 나는 남편이 내 편인 것처럼 느껴졌고 걱정하는 말에 마음에 안정감을 찾았다. 하지만 몇 년이 흘러도 이 문제는 완벽히 해소되지 못했다.
내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해가 쌓이고 힘든 나날을 보내다 보니 삶의 의미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 당시에 재미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다문화센터에서 글도 배우며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교회 다니기를 권유한 고모님께 이렇게 말했다.'고모님 나는 모든 종교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무슬림은 꼭 하면 안 되는 의무가 있고 고모님은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고모님 그냥 내 종교를 받아주세요'라고 말했다.
고모님의 기분을 나도 알고 있고 내 생각을 이해하실까 싶은 마음으로 말씀을 드렸다. 강요하지 마시고 이해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전했다. 내가 한국말을 배운 후 마음이 열리면 이야기해도 늦지 않으니 종교 이야기는 나중에 하셨으면 좋겠다고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 후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견디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인간관계가 참 어렵다.
종교는 강요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믿는 것이라 생각한다. 거울없이 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입장이 돼야 그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딜로자 명예기자(우즈베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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